설교노트

26년추수감사주일설교(제목: 주님 더 원할 것이 없습니다)
2026-11-01 09:54:56
김성철
조회수   11

26년 추수감사주일

제목 : 주님, 더 원할 것이 없습니다

본문 : 시편23:1~6

 

오늘은 추수감사예배로 드립니다. 추수감사절은 구약성경에서 한 해의 첫 곡물 수확에 감사해서 지켰던 맥추절과 곡식과 과일을 거둔 뒤 지켰던 초막절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직접적인 유래는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신대륙 메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첫 해 신대륙의 혹독한 추위와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원주민에게 농사법을 배워 1621년 가을에 첫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이에 도움을 준 원주민을 초대해 3일간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눈 것이 현대 추수감사절의 직접적 유래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했고 한국에 온 초기 미국 선교사님들은 이 전통을 한국교회에 소개하면서 한국교회도 1908년 제2회 대한노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자고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핵심은 척박한 환경 기근 전염병으로 초기 청교도들 102명 중 절반이 죽었지만 그 모진 시련 속에서도 살아남아 결실을 맺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감사는 모든 상황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현재 내게 있는 것을 찾아서 하나님께 절대 감사를 드릴 때 시작됩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요 설교가인 메튜 헨리가 어느 날 밤 강도를 만났습니다. 귀가 중이었던 그를 덮친 강도는 피가 철철 흐르도록 구타하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신학자는 먼저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내가 강도당한 입장인 것을 감사합니다. 돈을 빼앗겼으나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나를 괴롭힌 그 강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가 다시는 강도로 살지 않도록 하옵소서”

이 기도 내용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충격이 됩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원망 불평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믿음으로 살아왔는데 왜 강도로부터 지켜주시지 않나요? 제가 주님을 위해 수고도 많이 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도 꽤 했는데 주일도 지키고 기도도 했는데 왜 제 인생을 이렇게 비참하게 하십니까? 제가 가진 것 다 빼앗기고, 강도에게 맞아 피가 철철 흐릅니다. 주님 살아계신 것 맞습니까?” 상황을 보면 온통 불평거리입니다. 그런데 메튜 헨리 목사님은 그 상황에서도 감사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사가 될 수도 있고 불평과 원망도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생각을 지키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고 생각하고...’ 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건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편히 잘 수 있는 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 없는 노숙자들을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사가 없는 부부들을 생각합니다.

지진이 없는 나라에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를 생각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깨진 가정들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믿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감사는 현재 내게 있는 것을 찾아낼 때 시작됩니다. 나면서부터 중증 뇌성마비 장애를 가졌던 송명희 시인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공평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사무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 “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찬양했습니다. 모든 생각을 하나님 편에서 하는 사람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킬 때 감사가 나옵니다.

 

오늘 시편 23편은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알 정도로 유명한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에 대한 배경으로 구약성경학자들은 많은 추측을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다윗의 삶 가운데 가장 처절하고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비참한 시기인 사울 왕에게 도망치면서 광야생활 하던 때이거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도망칠 때 기록한 시라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어떤 학자들은 시에 흐르는 내용이 너무나 풍요롭고 기름진 인생처럼 보여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권을 견고히 하여 안정과 번영을 누리던 때로 다윗의 노년에 지은 시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이 둘의 주장이 다 적합한 시가 시편 23편입니다.

 

1~2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지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합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I shall not be in want”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결핍도 없이 최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모습을 시인은 양이 목자의 인도함을 받아 맑은 물가에서 목을 시원하게 축이고서 푸른 풀밭에서 배부르게 풀을 뜯어 먹고 평안히 누워있는 양의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또한 5절에서 시인은 ‘주께서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자신의 인생의 행복과 풍요로움이 차고 넘친다고 찬양합니다. 현재 시인의 모습은 모든 것이 가득차 있는 최고의 삶의 행복의 상태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3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한 때 절망과 낙심과 우울함과 염려와 정신공황상태에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의 영혼이 깊은 절망의 구덩이에서 헤메이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시켜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을 보면 골리앗을 물매 돌 하나로 쓰러뜨리고 수많은 싸움에서 승리한 위대한 용사요 왕이요 시인이요 음악가로서 겉으로 볼 때 그는 대단한 업적을 남긴 영웅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의 내면은 수없이 많은 죄를 짓고 때로는 대적자들로인해 두려움과 공황장애를 겪었습니다. 시편 40편에 보면 다윗은 자신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또 자신의 죄가 머리털보다 많다고도 합니다. 시편 57편에서는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다고 했습니다. 시편 86편에서는 내 영혼이 스올(지옥)에 던져졌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다윗도 보통 사람과 똑같이 허물과 실수가 많았고, 죄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습니다. 때로 대적자들의 조롱과 살해 협박으로 망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우울증 불안증 정신공황장애를 겪으면서 그의 영혼은 지옥 밑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뿐만아니라 4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 위기의 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했겠습니까?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 어느 날 친구 요나단을 만나 이렇게 토로합니다.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삼상20:3)” 한 걸음은 약 40Cm정도 됩니다. 40cm 옆에 수천Km 죽음의 낭떠러지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걸음 걸음이 얼마나 살 떨리고 무섭겠습니까? 한번은 다윗이 사울왕을 위해서 수금을 타고 있는데 갑자기 창이 날라와서 벽에 박혔습니다. 1센티만 창이 자기 쪽으로 향했으면 그는 즉사했을 것입니다. 또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이 동굴 저 동굴로 숨어 다닐 때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습니다. 어느 골짜기에 사울의 첩자가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때는 아마도 두 눈 감고 두 발 뻗고 잠을 자 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죽고 왕이 된 뒤에는 편했습니까? 아닙니다. 이번에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서 아버지를 죽일려고 달려듭니다. 그때는 이미 다윗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도망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모사꾼 아히도벨의 말을 들었다면 다윗은 즉시 추격을 당해 죽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인생길은 수없이 여러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공포가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이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결국 승리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은 살면서 수많은 원수들을 만났습니다. 골리앗을 비롯해서 전쟁에서 만난 수많은 적군들이 다윗을 죽이고자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수의 눈앞에서 승리의 상을 차려 주셨습니다. 결국 다윗은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6절) 찬양합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목자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오, 인자하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다윗의 허물과 죄, 실수와 연약함을 감당해 주시고 키워주신 분이셨습니다. 부족하다고 짤라 버리거나 쫓아내신 분이 아니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여호와의 집에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험하고 유혹이 많은 광야 같은 세상 가운데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곳은 여호와의 집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대적자들로 인해 그의 인생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로인해 극심한 두려움와 불안 속에 그 영혼은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져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서 다윗을 승리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심으로 그의 인생이 더 이상 바랄것이 없는 행복한 인생 푸른 초장과 맑은 물 가에서 배부르게 누워있는 양과 같은 삶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고난이 없어서 부족한 것이 없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되시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갈 때도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라고 믿음으로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동물의 왕국에서 수많은 동물들의 모습을 봅니다. 초원에서 물을 마시며 풀을 뜯어 먹는 그들의 모습은 매우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대부분의 동물들이 잠시의 긴장도 늦추지 아니하고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을 봅니다. 언제 자신보다 강한 동물에게 잡아먹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풀을 뜯어 먹는 양들의 모습은 매우 평화롭습니다. 양은 동물 중에 가장 연약한 동물입니다. 다리도 없고 날카로운 이도 없고 발톱도 없습니다. 사나운 동물이 공격하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양들이 어떻게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고 푸른 풀밭에 누워 여유롭게 쉬기도 하고 낮잠도 잘 수 있을까요? 그들 곁에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에겐 오직 목자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공급해 주신다! 체험 해 보신 성도들은 다 압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9~10) 우리의 구원의 문 되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인생에 필요한 모든 꼴을 얻습니다. 그것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생명의 꼴을 얻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 밖에 살면 인생을 도둑질당하게 됩니다. 시간을 도둑질당하게 되고, 생명을 도둑질당하게 되고, 미래를 도둑질당하게 되며, 심지어 천하보다 귀한 영혼까지 도둑질당하고, 삶의 모든 영역은 허탄하게 무너지고 파괴됩니다. 죄와 사망 권세를 가진 사탄 마귀가 우리의 배후에서 삶의 전 영역을 죽이고 멸망시켜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삶이 갈수록 황폐해집니다.

 

시편 34:10절에서 다윗이 했던 고백입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 목숨을 의지하려 했던 때에 지은 시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쓴 것입니다. 그러자 아기스 신하들이 ‘사울은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했습니다. 저 놈을 죽여야 합니다. 다윗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자 아기스 왕이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 데려왔느냐‘ 하면서 쫓아냈습니다. 다윗은 이 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내 삶은 안전하고 풍족하지만 사람을 의지하면 안전할 것 같은데 망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찬양했습니다. 그리고는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리지만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의 특징입니다. 아무리 젊은 사자처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내 능력과 실력을 발휘해서 세상의 것을 다 움켜쥐고 먹고 마시고 채우고 또 채우며 가지고 더 가져도 도무지 만족이 없고 채워지지 않음을 봅니다. 블레즈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의 영혼에는 세상의 그 어떤 물질이나 지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무한한 공간이 존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우주의 먼지와 같이 나약한 존재이지만 영혼만큼은 우주 전체를 품고도 남을 만큼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은 세상의 그 어떤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늘 허기를 느끼고 부족함을 느끼고 불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존재의 영역을 채워주고, 영원한 생명을 부어주고, 또 영혼의 만족을 주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 때에도 안위함을 주고, 암에 걸려도 생명의 안정감을 주며, 몸이 쇠약해져 가고, 얼굴에 주름이 져도 기쁨이 넘치는 것은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다윗처럼 ”주님, 더 원할 것이 없이 제 삶은 풍성합니다. 주님, 더 바랄 것이 없이 저의 삶은 만족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선한목자되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던 바울은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과 가난과 궁핍과 죽음의 위협 속에 살아갔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졌습니다.(고후6:9~10) 어떻게 부족함 속에서 결핍 속에서 죽음의 위협 속에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 구원을 경험했고, 부활을 경험했고, 부패하지 않고 썩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했고, 주님의 능력 안에서 보호받는 삶을 경험했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면서 푸른 풀밭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눈을 열어서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믿음의 눈을 가지고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 안에서 내가 받은 복을 세워보는 이번 추수감사주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 제목을 100가지 1000가지를 찾아보기를 권면합니다. 하나님이 현재 내게 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영적인 눈을 열어 세어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찬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영적 눈이 열리고 믿음의 생각이 열리면 감사가 하늘의 뭇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차고 넘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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