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가을특새아브람8
제목 : 반복된 실수를 이기는 약속의 힘
본문 : 창세기 20:1~13
결단찬양 : 오신실하신 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소돔과 고모라가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유황과 불로 심판받은 이후, 아브라함이 20여 년 동안 정착했던 헤브론의 마므레를 떠나 남방 그랄 땅으로 이주한 직후 발생한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갑자기 헤브론에서 블레셋 왕인 아비멜렉이 관할하는 그랄 땅으로 이주했는지 그 이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목초지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을 볼 때 기도없이 새 땅을 찾아 떠나면 꼭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브라함은 이번에도 과거에 했던 실수를 반복합니다. 우리는 12장에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생겨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아내 사라를 바로 왕에게 빼앗겼다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문제가 잘 해결되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 사건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왜 아브라함이 또다시 아내 사라를 향해 누이라고 속여서 말하게 했을까요? 11절에 보닌까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라고 아비멜렉 왕에게 사라를 그의 누이라고 거짓말 했던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야만인이기에 혹시라도 아내 사라 때문에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기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24년 전에 했던 실수를 또다시 반복했을까요? 사실 24년 전 애굽에서의 실수는 그래도 신앙의 초창기였기에 이해가 됩니다.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었고 영적으로 어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사건은 아브라함의 신앙이 성숙해져 있을 때입니다. 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횃불언약과 할례언약을 통해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라의 여종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던 사건으로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이름까지 개명을 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 내년에 아들 이삭을 주시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놓은 상태인지라 이번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의 반복되는 죄 문제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경험을 많이 했다고 실수가 줄어들고 완벽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죄를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60이 되고 70을 넘으면 철이 들고 이제는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타락한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고 신앙생활을 많이 했다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과거의 실수 때문에 죽을 뻔했어도 사람은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를 보면 거의가 다 반복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힘들 때마다 꼭 술을 마십니다.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반복적으로 도박에 손을 댑니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던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거의 반사적으로 같은 행동을 취합니다. 범죄자들의 전과기록을 보면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죄를 다양하게 짓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죄를 반복해서 짓는다는 것입니다. 절도죄를 범한 사람은 계속 절도죄를 범합니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범한 사람은 계속 같은 죄를 짓습니다. 사기를 친 사람은 감옥을 갔다 와서도 또 사기를 칩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반복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심각한 죄 문제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아브라함 안에도 고쳐지지 않는 그런 반복되는 죄성이 심겨져 있다고 봅니다. 휴 미실다인은 이것을 몸에 밴 어린 시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성장한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과거의 상처 받은 어린아이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어린 시절 부모님의 양육 패턴이나 어떤 사건에 의해 나도 모르게 습득되어 버린 과거의 어린아이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몸에 밴 어린 시절의 습관이 현재 성인이 된 내 삶을 끌고 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아브라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몸에 벤 어린 시절 어떤 상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유치하게 행동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향해 네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느냐고 징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잘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몸에 벤 상처는 치료 받아야 하고 현재의 어른인 새로운 아브라함이 행동하게끔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숙한 믿음의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오랜 광야훈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믿음이 아닙니다. 오랜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믿음이 성장하고 자랐음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최고봉의 신앙의 경지는 하나님께서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지체하지 않고 드린 사건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창22:12)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이제야 너를 믿음의 조상으로 내가 인정한다고 칭찬해 준 사건입니다. 이 때가 신앙생활 한지 거의 40년이 되는 시기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숱한 인생의 사건들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반복된 실수와 죄 속에서도 하나님이 끊임없는 용서와 사랑을 받으면서 형성된 변화입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읽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여 출애굽 하는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리적으로 애굽을 며칠 만에 출애굽 했지만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출애굽은 무려 4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숱한 광야 훈련을 통해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노예근성을 조금씩 조금씩 벗어 간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습관 기준 삶의 실수를 끊어내는 하나님의 광야 훈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40년이 걸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40년이 걸렸습니다. 모세도 40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하나님이 ‘야 너 진짜 멋있는 내 자녀구나! 야 네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구나’ 칭찬해 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지름길이 없습니다. 실수하고 무너져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한가지 사실만 붙잡고 그 훈련의 시간에 도망가지만 않으면 됩니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변화됩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
둘째로 반복된 실수를 이기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윤리적인 안경을 쓰고 보면 얼른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실수한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했기 때문에 데려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하지만 책망을 듣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비멜렉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의문이 생깁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이 잘못했는데 아비멜렉에게 책임을 물으시는가? 정말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이냐, 윤리적이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두고 그의 인생길을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실수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폐기처분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또 다시 실수해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가자 그날 밤에 아비멜렉의 꿈속으로 긴급히 들어가셔서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유를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설명하고 계십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급하게 꿈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사라를 만지지 못하도록 하십니까? 아비멜렉이 사라를 만지면 하나님의 언약이 실패도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인생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약속이 반복적으로 실수하는 아브라함의 인생을 살려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인격이 훌륭해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견고해서 천하만민에게 복을 공급해 주는 복의 근원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아브라함의 인생을 생각하면 기가 죽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 인생을 창세기 말씀을 통하여 연구해 보닌까 아브라함처럼 허물과 약점투성이인 사람이 어떻게 인류에게 복을 공급해 주는 복덩어리로 살 수 있었을까 오히려 의아해집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인생은 그의 허물과 죄 때문에 진즉 실패하고 이혼당하고 망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망하지 않고 실패해도 또 다시 일어나고 선지자가 되고 왕의 반열에 서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는 인생을 살도록 부르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하나님이 한 번 한 약속은 어떤 상황, 어떤 실수, 어떤 허물 속에서도 폐기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에 그 약속은 성취되고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합시다. 우리도 동일하게 허물 많고, 실수도 많이 하고, 반복적으로 같은 죄를 범하지만 우리에게는 놀라운 십자가의 언약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십자가 언약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살아가면 하나님게서 우리를 승리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섬세하게 개입하셔서 모든 사건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것은 우리가 잘 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절) 이 말씀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약속을 받은 몸입니다. 복음이 그렇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어떤 죄인도 매일 새날 새 아침 영광의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복된 실수를 하더라도 약속을 따라 구원의 계획을 신실하게 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 안에 어떤 과거의 사건으로 묶여 있는지 아십니다. 내가 왜 그런 상황이 오면 반복적인 실수를 하는지 아십니다.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입니다. 특별히 예수님 안에서 체결된 십자가의 언약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아무리 소망없는 사람도 예수님만 믿으면, 그 분을 나의 구원의 주님으로 고백하면 살아납니다. 회복됩니다. 치유됩니다. 예수님 안에 체결된 그 약속이 오늘 우리를 살려내고 있음을 믿읍시다. 우리의 반복된 실수 보다 십자가의 언약 안에 있는 약속의 힘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믿읍시다. 무엇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그 약속이 우리 안에 있음을 붙잡으면서 부족하고 허물많지만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매일 매일 예수님 안에서 다시 시작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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