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가을특새아브람6
제목 : 수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본문 : 창세기16:1~6
찬양 : 주 안에 있는 나에게(370장)
우리는 15장에서 그돌라오멜의 보복을 두려워하던 아브람에게 찾아와서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다” 말씀하시고, 자식문제로 불신에 빠져있는 아브람에게 하늘의 뭇별들을 보여주면서 “너의 자손이 이와같을 것이다” 재확인해 주셨음을 배웠습니다. 이 때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또다시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15장 7절에서 땅에 대한 약속을 또다시 말씀합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이 때 아브람은 네~ 저는 이 약속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라고 부탁합니다. 담대한 믿음의 요구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신다는 표증으로 ‘횃불 언약식’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 삼 년 된 숫 양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을 쪼개라고 하신 뒤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근동지방의 언약체결방식입니다. 계약 당사자가 서로 언약을 맺고 쪼갠 제물 사이를 같이 지나갔습니다. 만약에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의 몸을 쪼개 버린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쌍방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실 때 횃불로 임재하셔서 혼자 지나가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약속은 하나님의 생명을 걸고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아브람의 상태와 관계없이 하나님이 실행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쪼갠 짐승처럼 스스로 저주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언약식에 아브람도 함께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람을 깊이 잠들게 해서 이 언약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다만 하나님 홀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것을 바라보게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여전히 허물 많고 부족한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믿음이 충만한데 또다시 하나님과 약속을 저버리고 불신의 행동을 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만약 아브람이 횃불 언약식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 가운데를 지나갔다면 이 언약을 어길시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믿음이 지금은 확고하지만 또다시 무너질 것을 아시고 자신만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람의 이야기는 마태복음 26장에 나오는 베드로와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자 베드로는 호언장담합니다. ”모두 주를 버릴 지라도 나느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미리 말씀해 주십니다. 하룻밤이 지나가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잡혀 대제사장 집에 끌려갈 때 베드로는 계집종 앞에서 세 번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저주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자식을 주시겠다고 하신 이 약속을 변함없이 지키기에는 너무나 연약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쌍방언약이 아닌 일방적 언약으로 하나님만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내가 가진 이 믿음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은 철저히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 나온 것도 내 의지와 결단과 노력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새벽기도회를 사모하게 하시고 나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이 자리에 앉게 하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창세기 16장의 아브람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수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의 것으로 영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라의 실수와 하갈의 실수를 품어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나에게도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1절 말씀은 아브람이 왜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아버렸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여기서 보면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라는 말씀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분명히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뭇별과 같은 많은 자식을 주겠다며 횃불언약까지 주셨습니다. 아브람과 사래의 마음이 얼마나 들떴을까요? 얼마나 흥분과 기대감으로 설레였을까요? 하나님께 지난 10년 동안 그토록 훈련시키더니 드디어 주시는구나 하고 은혜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난 후 사래는 금방이라도 입덧을 할 줄 알았습니다. 금방 배가 불러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자녀를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처럼 자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도 분명한 언약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사래는 임신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사래로부터 시작된 불신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큰 감동으로 말씀속에 예배속에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환신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나를 사랑하는 주님이 분명히 내 기도제목을 들어주실 것이다’는 믿음을 갖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도제목을 선포했음에도 현실은 똑같습니다. 여전히 가난하고, 몸은 아프고, 자녀는 변화되지 않고 과거와 똑같이 현재의 삶은 여전히 고달픕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화려하고 크고 놀라울 정도로 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데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의심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지금쯤이면 내 상황이 바뀌어야 되지 않는가? 이렇게까지 기도했으면 응답이 와야 되지 않는가? 저는 사래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75세가 되어도 아기가 생기지 않는 그녀의 고민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자신의 몸에서 임신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 얼마나 사래가 절망했는지 그녀의 아픔이 이해가 됩니다. 결국 사래는 “믿음은 믿음이고 현실은 현실이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인간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2절 말씀입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사래는 먼저 남편에게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서운한 감정을 표출합니다. 15장에서 분명히 자녀를 주시겠다고 했는데 왜 안 주시는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런 마음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종 하갈을 통해 자식을 낳자고 제안하고 맙니다. 이 제안을 했던 사래는 여자로서의 자존심과 슬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참 재미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아브람입니다. 2절 하반절에 보면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람도 그동안 미안해서 말을 못했을 뿐이지 속으로는 사래의 여종 하갈을 취해서라도 아들을 낳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었다면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분명히 ‘내 몸에서 날 자가 내 상속자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소! 여보 정신 차리시오.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기도합시다. 나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되리라 믿소!” 이렇게 나왔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아무리 사래가 인간적인 제안을 했더라도 아브람이 깨어서 하나님 편에 서서 ‘사탄아 물러가라! 외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아브람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보, 그렇게 하는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합시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사래의 여종 하갈과 동침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신속하게 나왔습니다. 하갈이 임신한 것입니다. 하갈이 아브람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아브람의 눈시울이 불거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쉽게 자식문제를 해결해 주시는구나!’ 생각하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갈이 임신한 후 모든 것이 아브람과 사래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하갈이 잉태하는 순간부터 아브람의 가정에 풍파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자마자 주인마님이신 사래를 공손이 섬겼던 여종이 해가 중천에 떠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갈이 아이를 잉태하자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습니다. 입만 벌렸다 하면 “복숭아가 먹고 싶다. 딸기가 먹고 싶다. 왕만두 사와라! 삼겹살 사와라”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사래가 일 좀 시키려고 하면 ‘뱃속의 아이가 좀 이상한 것 같다’ 하면서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사래는 지쳐갔고 화병이 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사래의 분노는 아브람에게 터지고 말았습니다. 툭하면 부부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나한테 뭐라 하지 말고,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마침내 사래는 작심하고 하갈을 괴롭히기 시작하자 하갈은 사래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결국 가출을 하게 됩니다. 자식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던 시도가 오히려 가정이 깨질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교훈을 얻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쉽지만 결과는 혹독한 고통이 뒤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람은 지난 10년 동안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던 자식 문제를 사래의 여종 하갈을 취해서 간단히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깨지고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하갈은 쫓겨나야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아무리 상황과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인간적인 편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함을 배웁니다. 리는 힘든 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앞질러서는 안 됩니다. 내 인생이 안 풀릴 때도 조급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쁠수록 먼저 기도하고, 바쁠수록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광주동광교회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놀라운 것은 위기에 처한 아브람 가정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가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엉킨 실타래 같은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하갈에게 찾아가서 그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하갈이 자기 위치를 지키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문제는 아브람과 사래가 만들어 놓고 수습은 하나님이 해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하갈을 위로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씨가 번성하게 되고, 강대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짓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이란 ‘들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신음소리와 호소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문제들을 온전히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엎질러진 물과 같이 우리가 저질러놓고 돌이킬 수 없고, 수습할 수 없는 일들을 자주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죄와 실수에 대해서 책임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책임질 수 있습니까? 남의 가정을 망가뜨려놓고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이미 상대방은 상처를 받았는데,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결국 우리 죄와 허물을 책임지고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죄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와 율법의 저주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실수와 허물투성이입니다. 우리의 죄로 우리의 실수로 우리의 허물로 문제를 만들어놓고 해결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로인해 파생된 문제까지 수습해 주시면서 다시 기회를 주시고 새롭게 출발하도록 돕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아침 우리의 삶에 다시 한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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