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년가을세례식설교
제목 :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려 함이라
본문 : 로마서6:3~4절
오늘은 세례식 주일로 드립니다. 오영기, 문정자, 조경미 성도님이 세례를 받습니다. 또한 이예닮 학생의 입교식도 있습니다. 올 3월에는 정순주 김미숙 편성자 전숙자 성도님 4분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교회에 해마다 세례받는 성도가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요 기뻐할 일입니다. 아마 오늘 천국 신문 1면에 광주동광교회에서 베풀어지는 세례소식이 대문짝만하게 나올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천국에서 큰 잔치가 열리고 있으리라 짐작도 해봅니다. 그만큼 교회에서 세례예식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세례식 주일 때마다 설교 말씀은 늘 비슷하여 고민입니다. 오늘 말씀도 매년 세례식 주일마다 했던 그 말씀입니다. 전혀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먼저 세례받은 자로서 오늘 세례받는 성도님들을 축하하면서 과거에 세례받았던 그 날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세례의 의미를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서 세례받은 자로서 남은 인생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밥티스마’라 하며 ‘잠기다 적시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어의 의미를 충실히 살리면 세례(洗禮)란 ‘죄를 씻는 예식임과 동시에 죄를 물속에 장례지낸다’ 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세례는 물속에 잠김으로써 옛사람이 죽고 물에서 나옴으로써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죄악 된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결단의 예식입니다. 갈라디아서 3:27절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례는 냄새나는 죄의 누더기 옷을 벗고 흠없고 깨끗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새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결국 세례는 그리스도가 지어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새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6장 3-4절 말씀은 더욱더 정확하게 세례란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세례란 무엇인지 3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세례는 나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영적 장례식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무릇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세례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는 의식입니다. 다시 말해서 2000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나도 그 예수님과 함께 그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나의 죄를 대신 치르기 위해 속죄의 값을 지불하는 죽음임을 영접하고 세례받는 사람도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함께 못 박아 죽이는 예식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합하여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 세례를 받는 순간 지금까지 범했던 과거의 모든 죄와 아담 안에서 흘러온 원죄까지 깨끗이 씻겨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세례받을 3분 안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역사 곧 옛 자아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찬송가 258장에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이렇게 찬송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여러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히틀러의 죄도 깨끗하게 할 수 있고, 6.25 동족상잔을 일으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김일성의 죄도 씻어낼 수 있으며, 용서할 수 없는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이나 강호순 같은 자의 죄까지도 회개만 한다면 깨끗이 씻겨낼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보혈이 히틀러나 유영철과 같은 흉악한 죄는 씻어낼 수 없다면 우리의 죄 중에서 어떤 더러운 죄는 씻겨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은 그 어떤 죄도 인류가 시작된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범한 모든 죄까지도 다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례받으신 여러분! 세례 받을 때 십자가에서 옛사람을 장사지냈습니까? 그 때 나의 모든 죄가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을 믿습니까? 심지어 세례받은 이후에도 죄를 짓게 될 것인데 그 때마다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면 나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고,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양털같이 희게 될 것임을 믿습니까? 세례는 물로 나의 죄를 씻어내는 의식이 아니라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씻어내는 의식입니다. 물론 세례받을 때 옛사람을 장사지냈지만 여전히 세례받은 이후에도 그 옛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길길이 날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세례받은 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 주님 깜박했습니다. 나의 옛사람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나는 새사람이 된 사람입니다” 이렇게 세례받은 자임을 고백하고 나의 옛 자아가 죽었음을 선포하고 나는 새사람이라고 외쳐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세례받은 자는 옛 자아가 살아날 때마다 사도 바울처럼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장사지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옛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장사지냈다고 할지라도 무의식까지 심겨진 그 옛 본성이 틈만 나면 되살아나려 하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았습니까? 이제부터 나는 날마다 죽노라! 선포하십시오. 이것이 세례받은 자로서 날마다 세례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영적싸움입니다.
둘째, 세례는 그리스도 함께 나도 부활하는 예식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나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장사지내는 의식임과 동시에 예수님과 함께 살아나는 예식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지낸 바 되었지만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몸은 부활의 새 몸이었고 더 이상 죽지 않는 영생하는 새 몸이었습니다. 완전히 영광스러운 새로운 존재였습니다. 세례받은 사람도 동일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지만 다시 물 밖으로 나올 때는 완전한 새 사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기쁨에 대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세례받았습니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세례받은 사람은 다 새사람입니다. 세례받았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함께 살아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운 피조물로 새 창조 되었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제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나의 옛 자아는 죽었다. 이제 나는 새사람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새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갈라디아에서 바울은 세례받은 자의 새 삶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세례는 내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예식입니다. 옛사람의 시절에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왕이었습니다. 내 생각이 내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항상 무엇이 나에게 유익이 될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세례받으면서 내 삶의 주인인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내 인생의 왕인 나를 십자가에서 장례식을 치를 때 그 자리에 예수님이 왕으로 들어오십니다. 이제 내 인생의 왕좌에서 나는 내려와 무릎을 꿇었고 그 자리에 예수님이 앉아 계십니다. 세례받는 순간 내 인생의 정권교체가 일어나고 내 삶의 주인이 바뀌면서 결국 내 인생의 운영 방법, 선택의 기준, 인생의 목표와 방향, 가치관 세계관, 인생의 비전이 다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인생인 것입니다. 새사람 새로운 존재란 바로 이것입니다. 내 겉모습은 예전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내 속사람이 180도 변화된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왕으로 들어오셨고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 되었습니다.
세례받은 여러분은 인생의 주인이 바뀌어졌습니까? 과거 옛 자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 내 삶의 왕좌에 앉아 계신 주인이 예수님 맞습니까? 우리는 세례받은 자로서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날마다 물어야 합니다. 새 사람 새로운 존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의 변화를 말합니다. 더 직접적으로 내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께 넘겨지는 정권교체가 확실하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새사람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존재가 되면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나타나는 삶의 열매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삶입니다.
셋째, 세례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는 예식입니다.
오늘 세례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4절 말씀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왜? 세례를 베풉니까?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을 장사지내면서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를 씻겨내고 정결하게 하는 예식이면서 동시에 예수님과 함께 살아나서 이제는 내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정권교체가 일어나는 예식입니다. 이렇게 세례식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이유는 결론적으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입니다.
저는 세례식 때마다 어거스틴이 회심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준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어거스틴이 세례받기 전 그는 탕자였습니다. 부모님이 뼈 빠지게 돈 벌어 유학을 보냈더니 카르타고에서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한 여인과 동거하여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또한 이단 마니교에 들어가 어머니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심지어 출세를 위해 어머니를 속이고 밤중에 배 타고 이탈리아로 야반도주했습니다. 그는 천재적 머리로 밀라노에서 명망있는 수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성공을 위해 명망있는 귀족 집안의 10세 된 소녀와 약혼을 했습니다. 당시 법적으로 12세와 소녀와 결혼할 수 있었기에 어거스틴은 결혼을 위해 2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2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거스틴은 쾌락과 지식과 명성을 얻었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에는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통해 성경을 깨달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명예 성공 쾌락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둘 사이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에게 순결을 주소서 절제를 주소서 그러나 아직은 마소서” 이렇게 두 의지가 싸우면서 그의 영혼은 번민했고 어느 날 “오 주님 어느 때까지입니까? 오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당신께서 영원히 노하시려 하십니까? 나의 이전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소서” 이렇게 울부짖고 있을 때 이웃집에 뜰에서 “들고 읽으라 들고 읽으라” (Tolle lege, Tolle lege) 어린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눈물을 똑 그치고 일어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소리가 성경을 펴서 첫눈에 띤 곳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달려가 두고 온 성경을 펼쳐서 첫눈에 들어온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 구절이 어거스틴을 회심시킨 로마서 13:13~14절 말씀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더 이상 읽을 마음도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때 어거스틴은 회심했고 다음 해인 387년 4월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받은 후 그는 10세된 어린 소녀와의 약혼을 파혼하고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고향에 내려가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주교가 되어 이단들과의 싸움에서 정통기독교를 지켜내는 위대한 변증가의 일을 해냈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과 세례가 보여준 것처럼 세례받은 자는 새로운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세례받은 자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세례받음으로 우리는 어둠에 빛으로 옮겨졌고,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신분이 바뀌었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예수님의 삶을 재현해야 하는 주님과 한 몸이 된 사람입니다. 죄의 옷을 벗고 예수님으로 의의 새 옷을 입는 사람이 어찌 흙탕물에서 놀겠습니까? 옛 자아는 죽었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살고 계시는데 어찌 의와 불법이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사귀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인 내 안에 어찌 우상이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어거스틴이 받은 말씀을 우리도 받읍시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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