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26년가을특새아브람의믿음10(제목: 최고의 사랑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2026-10-30 10:10:29
김성철
조회수   6

26년가을특새아브람10

제목 : 최고의 사랑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본문 : 창세기 22:1~14

결단찬양 : 사명

 

우리는 지금까지 창세기12장에서부터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왔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의 특징은 어려운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데 있습니다.

첫 번째는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했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순종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삶의 축복의 시작이었습니다.

두 번째 순종은 신앙생활 10년 되는 때에도 아들을 주시지 않자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아들로 삼으려는 계획을 가졌을 때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를 밖으로 끌고 나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했을 때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것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사라의 여종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입니다. 하나님과 13년 동안 교제가 끊어지다가 99세 때에 나타나셔서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말씀하시면서 할례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마취제도 없을 때에 할례는 목숨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여 자신과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의 남자의 포피를 베었습니다. 대단한 순종입니다.

네 번째는 이스마엘이 약속의 자녀 이삭을 희롱할 때 이스마엘을 쫓아내라는 말씀이 임했을 때입니다. 사실 자기에게서 난 아들을 죽음의 땅 광야로 내쫓는 행위는 아브라함에게는 뼈를 깍는 결단을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순종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에서 요구되는 가장 힘든 말씀이 임합니다. 22:1~2절 말씀입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그 일 후에”란 아브람을 위협하던 적대세력 그랄 왕 아비멜렉이 찾아와서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창21:22)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와서 평화협정을 맺던 이후였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의 위치가 가나안 지방에서 확고해졌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에서 보면 가장 은혜롭고 복된 때였습니다. 독자 이삭을 낳았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때였습니다. 모든 일이 형통하고 평탄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하십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려서, 100세에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들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금쪽같은 아들 이삭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죽여서 각을 떠서 불에 태우는 번제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험 치고는 너무나 잔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쫓아내라 할 때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21:12) 하셨습니다. 이삭이 분명히 언약의 자녀라고 했는데 왜 이런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하는 최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시험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때 얻은 외아들 이삭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대상입니다. 하지만 이삭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이삭이 분명히 신앙생활 최고의 축복의 열매이지만 그 축복의 열매에 매여 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축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아들이 우상이 되고, 하나님은 부수적인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 첫 자리에 계셔야 하고, 아브라함이 최고의 가치로 최고의 사랑의 대상으로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 첫 자리는 사랑하는 자녀도, 배우자도, 물질도, 어떤 꿈이나 이상도 자존심도 명예도 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6장 4~5절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의 제1순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으뜸이시오, 영광의 으뜸이시오, 가치의 으뜸이시오, 인생들이 섬겨야 할 대상의 첫 자리가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존재로, 최고의 가치로, 최고의 위치에 서 계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42:8절에서는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요, 대상이요, 섬겨야 할 으뜸의 존재로 높이 올려 들이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내 마음의 제 1순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학자 ‘마르바 던’은 “진정한 예배란 하나님을 높이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무한한 광휘에 완전히 잠기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예배는 우상일 뿐이다”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것이 내 마음을 차지한다면 그것이 영적간음이고 거기에서부터 삶의 무질서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마음의 첫 자리,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참된 예배는 시작됩니다.

 

지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함으로써 믿음의 조상으로서 가장 차원 높고 가장 심오한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길 원하셨습니다. 100세에 믿음으로 얻은 아들 하나로 만족하고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진정한 가치를 두는 삶에 최고의 행복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이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계시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을 보면 가끔씩 앞으로 이루어질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때, 그리고 사라의 나이 90세 때, 이삭이 태어난 것은 불가능한 가운데 자녀가 태어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라는 여자로서 경수가 끊어진 임신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마리아도 남자없이 임신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처녀였던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수태고지를 받았을 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 때 천사 가브리엘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면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삭이 번제물로 모리아 산에서 드려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모리아 산 근처 골고다에서 십자가형에 못 박혀 속죄 제물로 드려진 것과 같습니다. 더불어서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드려질 때 17살 나이였고, 아버지는 117세 정도 되었기에 충분이 힘으로 아버지를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순순히 아버지 뜻에 복종하여 밧줄에 묶이고 말없이 아버지의 칼을 받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것과 동일한 순종입니다. 예수님도 묵묵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은 후 아브라함은 3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사실 이 3일 길은 예수님이 장사 된지 3일을 지칭하는 죽음의 시간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편에서 보면 이미 죽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칼을 내리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급히 부르시면서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한 숫양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에 대해서 히브리서 11:19절에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다시 살려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22장 5절에서 아브라함은 분명히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여기서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번제로 드리지만 이삭은 다시 살아나서 함께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다는 믿음의 고백을 이미 한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이삭은 죽었다가 부활한 것으로 상징됩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이삭은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실 예수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 골고다의 길을 먼저 간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부활로서 쟁취하신 승리와 영광을 아브라함과 이삭이 먼저 맛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 해 보아야 할 부분은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막으셨지만 2000년 후 골고다에서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저주 받아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죽음의 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독생자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도 아버지 하나님은 그 기도에 귀를 막으셨습니다. 다른 기도는 다 들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울부짖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가혹한 요구라고만 생각한다면 2000년 후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놓으시고 저주받아 죽게 내버려 두신 하나님을 향해서도 ‘가혹하고 이해 할 수 없는 냉혹한 처사다’라고 해야 옳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왜 이삭을 요구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앞으로 2000년 후 아버지 하나님이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내놓으실 그 일을 미리서 아브라함에게 예행 연습을 시킨 것입니다. 그것도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고는 아브라함이 온전히 순종할 때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000년 후 자신의 독생자가 희생제물이 되는 그 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아들이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는 속죄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일을 끝까지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그렇게 실행하셨습니다. 이삭을 드리러 모리아 산으로 향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에서 우리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저주의 속죄제물로 드리는 하나님의 마음까지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의 여정에서 만나는 혹독한 시련이나 고난 앞에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의를 잃어버리고 믿음이 흔들립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환경을 만나면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러십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구요? 신앙의 줄을 놓아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내 마음의 첫 자리에 모시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실 오늘 말씀은 너무나 수준이 높은 순종의 세계를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이 여린 분들은 부담스럽게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보면 인간 세상에서도 자신이 섬기는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신하들이 많습니다. 고려역사를 보면 태조 왕건을 살리기 위해 부하 신숭겸은 왕건의 갑옷을 입고 후백제와 싸우면서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주군을 향한 충성이었습니다. 삼국지에 보면 조자룡은 조조 군대와의 전투 중에 주군 유비의 아들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을 알고 유비의 아들 아두를 찾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혈혈단신으로 조조 군대가 진치고 있는 적진에 뛰어 들어가 결국 아두를 구해옵니다. 사무엘하 23장에 보면 다윗의 세 용사는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주군인 다윗이 고향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의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자 적군을 뚫고 40KM를 달려가 우물 물을 길러왔습니다. 세상 역사에도 자신이 섬기는 주군에게 목숨을 바친 예가 수두룩합니다.

 

우리의 주군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나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놓으셨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가장 소중한 아들의 생명 값까지 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첫 번째 사랑의 대상으로 사랑하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면 주님은 우리의 순종의 삶에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씌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26)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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