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74강(제목: 내 대신 십자가품팔이하신 예수님)
2026-06-21 09:38:57
김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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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4

제목 : 내 대신 십자가 품팔이하신 예수님

말씀 : 누가복음2320~25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마시라고 한 그 잔을 받기로 작정하시고 고요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향해 가셨습니다. 그 길은 인류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아 지옥에까지 내던지는 저주의 길입니다. 온갖 조롱과 멸시와 수치와 발길질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채찍에 맞아 살점이 떨어지고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고 양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잔인한 형벌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태어나셨고 이 십자가를 향해 공생애 기간 동안 달려왔습니다. 이제 그 사명을 마치기 전 마지막 남은 하루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배척과 배신 죄성을 가진 인간들의 광기와 폭력 사탄의 음흉함까지 결합 된 잔악함이 예수님이 가시는 십자가를 향한 발걸음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해 보면서 4가지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1) 왜 종교지도자들과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목소리로 외쳤을까? 예수님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예수님을 배척했을까? 2) 왜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십자가에 못 박게 했을까? 진실을 알면서도 정의를 버리고 거짓을 택하는 빌라도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는가? 3) 예수님이 바라바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살인자 바라바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데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죽어야 하는가? 이것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4) 우리는 나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17:9~10) 과장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보다 더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만물 중에 없습니다. 마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기에 그게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한지를 아무도 모릅니다. 모두가 속마음과는 다른 표정으로 다른 모습을 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담에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했습니다. 모두가 시침을 떼고 부패한 속마음을 감추고 살기 때문에 그 사람 안에 타락하고 부패한 마음을 모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사 그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시고 그들의 행실대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의 마음이 부패해 있을까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생물체에는 결코 부패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싱싱한 생명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패한 시체에는 썩은 냄새가 납니다. 부패한 시체에서 얼마나 악취가 납니까? 왜 사람의 마음이 부패해 있을까요?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2:1)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육체는 살았지만 영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마음도 죽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사람의 영은 죽어있고 그 마음도 죽어서 부패한 시체처럼 악취가 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3:10~18) 이 말씀은 오늘 죄없으신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설명해 줍니다. 또한 진실을 알고도 정의를 버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준 빌라도의 연약한 마음을 설명해 줍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께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까? 왜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할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이라고 고함을 칩니까? 기대했던 정치적 구원자의 모습과 달랐기에 실망감이 컸을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선동과 군중심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심령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왜 빌라도가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고 세 번이나 죄가 없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풀어주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줍니까? 폭동을 두려워한 정치적 타협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보호하고자 그랬던 것입니다. 민란이 일어나면 로마 황제로부터 추궁을 받아 자칫 잘못하면 총독의 자리가 위태했기 때문입니다. 여론에 밀렸습니다. 다수의 힘이 정의를 굽게하고 불의를 행하게 한 것입니다.

 

인간이 정의롭고 선하고 정직한 것 같지만 손해 앞에 서면 누구나 팔은 안으로 굽어지고 이기적인 본성이 작동됩니다. 누구나 위기의 때에는 자기 살길을 찾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나아갑니다. 물론 악법도 법이다고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와 같은 깨끗한 양심을 가진 성인도 있지만 사람의 폐부를 시험하고 심장을 감찰하사 그의 행실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눈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17:14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라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수의 근원이신 구원의 주님이 죽은 내 마음에 오셔서 부패한 마음을 치료해 주시고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의 심령을 고쳐주실 때 우리는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마음에 쳐들어올 때 회개하여 마음이 새로워지고 생각이 바뀌고 기준이 바뀌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새사람이 됩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들려줍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왜 예수님은 흠 없고 깨끗하게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태어났고, 모든 삶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키셨고, 하나님까지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무지한 양 같아서 각기 자기 기준대로 고집대로 교만한 마음대로 내가 하나님이 되어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난하고 심판하고 정죄하면서 살았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버린 우리의 마음으로는 절대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얼마나 양심이 마비되고 거짓되고 마음이 부패했는지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고발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한다 하였노라”(53:4)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그 때 그 무리들은 전부 다 예수님이 자신의 죄 때문에 형벌을 당하고 예수님이 잘못해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그 무리들과 똑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은 스스로의 각성으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지 못합니다. 설사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그 실상을 안다고 해도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성실과 노력으로 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의 모양으로 바꾸었느니라“(1:21~23) 리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0~12) 자력으로 나 스스로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할 수 없습니다. 또한 타락한 인간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위에서 강력한 구원의 힘이 와야 한다고,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힘이 와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밖에서 구원의 손이 와야 죄와 허물에서 죽은 사람이 구원받습니다. 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세 팔았습니까? 사탄이 그의 부패한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왜 종교지도자들과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칩니까? 사탄이 그들의 탐욕과 타락한 마음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빌라도가 죄없다 3번이 무죄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줍니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려는 나약한 마음 죄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 부패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 안에 또 하나의 거짓된 영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2:2) 타락한 인간의 마음 부패한 인간의 마음에 사탄 마귀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타락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부패한 마음을 사탄 마귀가 유혹하면서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의지 결심 선한 양심까지도 쥐고 흔들어 무너뜨리는 악한 영들이 우는 사자처럼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공격하고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이 거대한 죄성과 악한 영의 힘을 끊어내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내는 복음을 예수님이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내 죄 값을 대신 짊어지사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완성하신 의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길을 가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행하신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과 유사한 형태가 우리나라 역사에도 있었습니다.

 

조선후기에 매 맞아 돈 버는 매품팔이가 그것입니다. 죄를 지은 양반이나 부유한 상인이 벌을 피하기 위해 가난한 백성을 매품팔이로 고용했습니다. 승정원일기에도 돈을 받고 대신 곤장을 맞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매품팔이는 엄연히 존재했던 조선시대의 극한의 직업중의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매품팔이를 하다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흥부전에 김좌수는 흥부를 불러서 돈 30냥을 줄 터이니 자기 대신 감영에 가서 매를 맞고 오라고 합니다. 흥부는 30냥을 받으면 10냥은 양식을 사고 5냥은 반찬을 사고 5냥은 나무를 사고 10냥은 매를 맞고 나서 몸조리하리라 생각하고 김좌수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다음날 아침밥을 지어 먹고 병영으로 매를 맞으러 가는데 공교롭게도 특별 사면이 내리는 바람에 흥부의 매품팔이는 무산되고 맙니다. 매를 맞아야만 돈을 벌 수 있었던 흥부는 오히려 매를 때려달라고 애원하다가 병영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사실 매품팔이는 처음부터 돈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종실록 6124일 기록에 의하면 전 좌랑 조승이 그 부친 조진이 병이 들었다고 하여 북을 울리며 아뢰어 아비를 대신하여 장형을 받기를 청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세종은 자식이 아비를 대신해 곤장을 맞는 것을 불허했으며 법에 의해 처벌했습니다. 반면에 선조실록 6420일 기록에는 군사가 아비의 장죄를 대신 받기를 원함에 따라 사납게 때려서 죽게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아버지를 대신해서 곤장을 맞은 아들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록들이 조선왕조실록에 종종 보이는 것으로 보아 자식이 부모를 위해 곤장을 맞는 일은 효행의 하나로 여겨져 은연중에 용납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관행이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어느새 돈을 받고 매를 맞는 거래로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있었던 매품팔이보다 더 가혹하고 공포스러운 십자가품팔이를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십자가 품팔이를 하셨습니다. 내가 달려 죽어야 할 그 십자가의 자리를 예수님이 대신 달리신 것입니다. 내가 저주받아 지옥에 던져져야 할 그곳까지 예수님이 대신 가신 것입니다. 그것도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죄인 된 우리를 위해서 값없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선하고 십자가품팔이를 해 줄 정도의 의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바라바와 같은 자들입니다. 바라바 그는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과 강도죄를 저지른 죄수였습니다. 그는 악질 중의 악질인 죄수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라바가 달려야 할 그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악질 죄수 바라바는 풀려나고 대신에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넘겨지셨습니다. 바라바를 살린 것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바라바에게 생명을 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바라바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모든 인간을 대표합니다. 우리도 바라바처럼 하나님께 반역한 자요 미움과 욕설과 비난으로 많은 영혼들을 살인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 품을 파심으로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지옥에 다녀오심으로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매품을 팔면 매 맞을 사람이 매를 맞지 않아도 되듯이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 품팔이를 해주심으로 저주받아 죽을 우리는 십자가에 죽지 않아도 되고 지옥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음으로 우리는 건강하게 살 수 있고 부유하게 살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틴루터는 이것을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의가 교환된다는 의미에서 즐거운 교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우리와의 즐거운 교환을 하심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된 인격을 자신에게 입히시고 자신의 무죄하고 승리하시는 품격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을 입고 단장한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그 십자가를 예수님이 대신 값없이 품팔이 해 주심으로 우리가 누리는 은혜와 해택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용서를 받았습니다. 에수님이 대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죄를 지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가난하게 되시므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수치를 당하심으로 우리가 영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거절당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저주를 받음으로 우리가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 대신 십자가품팔이를 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누리는 은혜와 혜택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고 우리가 이 은혜를 보답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겠습니다. 성경을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 아멘! 한 번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남은 삶,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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