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77강
제목 : 하늘 문이 활짝 열리다
본문 : 누가복음 23:44~46
제가 광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광주에서 저의 고향 장흥 대덕까지는 직행버스로 2시간 50분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길이 잘 뚫려서 자가용으로 1시간 30분이면 갑니다. 더 놀라운 것은 2026년 말에 광주에서 강진까지 고속도로가 뚫리면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마침내 고향 가는 길에 고속도로가 놓여서 과거 2시 50분 걸리던 거리가 1시간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 더 자주 많이 시골에 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롬버스가 1492년 10월 12일에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서쪽으로 항해하던 중에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는 죽을 때까지 인도로 알고 있었지만 그가 발견한 곳은 아메리카 신대륙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유럽인들은 대서양을 횡단하는 향해에 대해서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새로운 항로의 개척으로 인해 근세의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물론 원주민에 대한 약탈과 학살로 인한 만행으로 인해 콜럼버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항로를 개척한 그의 위대한 업적은 인류 역사가 반드시 기록해야 할 위대한 공로로 인정됩니다. 유럽은 이 신항로를 통해서 엄청난 부를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더 큰 진보를 만듭니다.
이제 21세기를 맞이한 인류는 신 우주 대항해 시대를 열고자 부단히 도전하고 있습니다. 과거 정부 주도를 넘어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와 달 화성 유인 탐사 시대를 열어가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1492년에 대항해 시대의 무대는 바다였지만 이제는 우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만약 신 우주 대항해 시대가 열린다면 우리의 삶은 새로운 차원으로 또 한 번의 새 시대의 변화와 혁신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고향으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가 놓여 시간만 단축되어도 말할 수 없이 기뻐합니다. 유럽인들은 신대륙으로 가는 신항로를 찾아준 콜럼버스의 공로를 잊지 않고 역사에 기록하며 그의 업적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주에 인류의 새로운 정착촌을 찾는 신 우주 대항해 시대를 열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뉴스페이스’ 프로젝트에 대해서 엄청난 희망을 품고 환호합니다. 그런데 A.D 1세기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살고 있는 인류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는 기적의 영적 신항로 하늘 고속도로를 만들어 놓으신 예수님의 업적에 대해서는 무감각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성한 복음으로 인해 새롭고 산길인 하늘 문이 활짝 열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게 크게 기뻐하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길, 새롭고 산 길, 하늘 문을 열어 놓은 이 사건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이 만들어 놓은 영적 신항로인 하늘 고속도로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하고 고마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44, 45절 말씀입니다.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님의 혀는 입천장에 붙었습니다. 뼈는 어그러졌습니다. 못 박힌 양손과 발에서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고통스러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고통 속에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정오에서 캄캄한 어둠이 임하였습니다. 정오에서 오후 3시까지는 해가 중천에 떠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인데 갑자기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두려워 떨며 말했습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도대체 왜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게 된 것입니까? 답은 예수님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에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버림받은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사 죄와 사망의 권세에 심판당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어두움의 권세자 사단이 최고의 힘을 발휘하는 시간입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누구나 캐고 들면 크고 작은 흠이나 잘못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완벽하고 깨끗하고 허물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까?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할 인간이 하나도 없기에 율법의 심판을 받아 죽어야 할 그 인간을 대신해서 지금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그럼에도 왜 예수님이 죽으셔야 합니까?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대속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탄이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사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정오 12부터 오후 3시까지 이 시간만큼은 율법의 정죄를 받아 죽어야 하는 인류의 대표자로서의 고통받아야 하는 상징적 저주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단의 밥, 무능력자, 실패자였습니다.
에베소서 6: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했습니다. 성경은 사탄을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이 부분을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승리하는 시간이라고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도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대속의 제물이 되어 저주받았고 버림받았고 고통 속에 있습니다. 악의 세력은 환호를 지르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세상은 어둠의 세력이 장악했다는 표시로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인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왕노릇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이시오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권자로 만물을 다스리시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탄이 사람의 영적인 눈을 가려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느끼지 마음을 혼미하게 하고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 안이 열리지 않으면 에베소서 말씀대로 어둠의 영의 유혹을 받아 그 영의 의도대로 살아갑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엡1:2)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직전 해가 빛을 잃고 온 세상이 캄캄해진 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가진 어둠의 세력들의 힘이 얼마나 세상을 강력하게 통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사탄이 승리했다고 소리를 지르고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였다고 환호하면서 어둠의 권세를 온 세상에 드러내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죽으시기 바로 직전 오후 3시가 되자 성소의 휘장 한가운데가 쭉 찢어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는 그 휘장입니다. 이 성소의 휘장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죄의 장벽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이방인이 함부로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 죽여도 되었습니다. 특별히 성소는 택함 받은 제사장만이 들어가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성소에서도 가장 거룩한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곳으로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냥 못 들어가고 양과 염소의 피로 제사를 드리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대제사장도 그곳에서 경외심 없이 행하면 죽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방울을 달고 밧줄을 매고 들어갑니다. 방울 소리가 나지 않으면 죽은 줄 알고 밧줄로 끌어냈습니다. 이제껏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십계명이 든 언약궤 뚜껑만 열어봐도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엄청난 거리감이 존재했습니다. 죄악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면 죽임을 당할 만큼 인간은 더럽고 추악한 존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까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죄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찢으셔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찢김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도 찢겨져 나갔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죽지 않고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 인류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3~14)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흠없는 깨끗하고 거룩한 피입니다. 이 피를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고 그 사람을 의롭게 여깁니다. 모든 율법을 지킨 것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히브리서 4:1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긍휼함을 얻습니다.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때에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자 하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하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왕이 국사를 보는 어전에 신하들이나 백성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왕이 들어오라고 해야 들어갑니다. 함부로 들어가면 국법으로 엄중히 그 죄를 묻습니다. 그러나 황태자 황공주들은 맘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동일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늘나라 황공주 황태자의 신분을 갖게 되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완성해 놓은 이 위대한 하늘 보좌로 나아가는 영적 신항로를 맘껏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해서 뚫어 놓은 이 영적 고속도로를 맘껏 이용해야 합니다. 하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하나님 보좌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이 영적 신항로를 통해서 모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고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하늘 보좌에 나아가서 모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에 주어진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이 영적 신항로를 이용하여 엄청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찬송가 370장에서 그들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라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누가 예수님이 만들어 놓은 이 영적 신항로를 통해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맘껏 누립니까? 주님이 이루신 십자가의 업적을 믿고 오직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십자가 밑에 나아가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완성해 놓으신 영적고속도로를 타고 하늘 보좌에 나아가서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인생의 두려운 문제가 기도제목이 되어 하나님께 아뢰게 되고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기쁨의 찬송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한 도시의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냉혈한 재판장도 한을 품고 원한을 풀어달라고 자주 번거롭게 나아가 간청하는 과부의 요청을 어쩔 수 없이 들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2000년 전에 뚫어 놓은 이 위대한 영적 신항로를 이용하지 않습니까? 공짜입니다. 통행로 없습니다. 수신료 없습니다. 언제든지 24시간 개방되어있습니다. 언제든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영적신항로를 통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어떤 기도제목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이 신항로를 통해서 공급됩니다. 그런데 이 영적 신항로 새롭고 산길을 담대히 이용하는 성도가 많지 않습니다.
모두가 바쁩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하늘 보좌에 나아가 자신의 삶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한 시간도 기도하지 못하는 성도가 태반입니다. 삶의 문제로 아파하고 고통하면서도 예수님의 뚫어 놓은 하늘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는 영혼이 희귀합니다.
마틴 루터는 “나는 너무 할 일이 많아서 아침에 기도로 세 시간을 보내야만 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할 일이 많을수록 루터는 더 많이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일하면 사람이 일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일을 잘해도 사람 수준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수준으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삶에 개입하시는 가장 강력한 통로입니다.
요즘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역이 기도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자면서 기도의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합니다. 또한 새벽기도 끝나고 2시간 정도 기도하려고 영적으로 몸부림을 칩니다. 때로 기도하다가 단상에서 잠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더 많이 머물러 보고자 떼를 써봅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바꿔놓습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기도제목이 바뀌고 응답받을 수밖에 없는 기도를 하게 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 이름이 드러나기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고 영광 받기를 원하는 기도 제목으로 바뀝니다. 내 뜻 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고 애통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깊이 머무르다 보면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성품을 흠모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새롭고 산길 영적 신항로를 열어놓으셨습니다. 하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그 은혜의 보좌로 가는 길이 열렸고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께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뚫어 놓은 영적신항로를 통해 은혜의 보좌 앞에 매일 담대히 나아갑시다. 기도의 자리는 예수님의 목숨값이 지불 된 특권의 자리입니다. 하늘 보좌로 나아가는 이 새롭고 산길은 예수님의 공로로 완성된 진리의 길 구원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이 길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 기도함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약속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맘껏 누리시는 복된 삶의 되시도록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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