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75강(십자가에서 바라본 사람 풍경)
2026-06-28 10:36:31
김성철
조회수   13

누가복음75

제목 : 십자가에서 바라본 사람풍경

본문 : 누가복음23:33~38

 

오늘 온세대예배로 유치부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 어른세대가 함께 한 공간에서 같은 찬양 같은 기도 같은 예배의 흐름속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어서 감사와 기쁨이 됩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 대로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다시 불을 지피자 주의 제단 위에!”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의 불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는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여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능력으로 임할 때 영적 눈이 뜨이고 나는 누구이며 삶의 목적이 무엇이고 내 삶의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약속된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내 삶을 불행하게 하는 죄를 회개하는 역사, 우울증, 두려움 불안한 마음이 치유되고,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새 힘을 얻으며, 질병이 치료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임하는 기적의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십자가에서 바라 본 사람풍경입니다.

1890년 경에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 James Tissot, 1836~1902)가 그린 우리 구세주가 십자가에 본 것이라는 성화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그림은 수없이 많이 그려졌지만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시선으로 내려다 본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표정을 그린 그림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림 맨 아래에 큰 슬픔으로 넋이 나가 표정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올려다보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가 보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뒤에 있는 세 여인 중앙에 있는 여인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이고 그 옆으로 예수님의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서 있습니다. 그 세 여인 옆에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이 있습니다. 그 뒤 붉은 망토를 두르고 양손을 모으고 있는 로마 군인 백부장이 있습니다. 그는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고백했습니다. 백부장 양 옆에는 긴창을 쥐고 있는 자들은 성전 경비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해 나눠가졌던 로마 군병들이 보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제사장들의 표정은 자신들의 뜻대로 되었다는 의기양양한 모습입니다.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와서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나옵니다. 그리고 무표정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 티소가 우리 구세주가 십자가에 본 것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오늘 본문은 십자가에 달려 온갖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는 예수님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반응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 위에서 내려다 본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떤지 깊이 묵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에 내려다 본 첫 번째 사람의 풍경입니다. 34절에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를 뽑을새 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눠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군병들입니다. 그들은 방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처참한 처형을 행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으로 인해 여러번 기절하기도 하고 뼈가 으스려지는 아픔으로 얼굴은 사색이 되고 호흡곤란을 느꼈고 눈빛은 초점을 잃었으며 이를 악물다 이가 흔들리고 혀가 말렸습니다. 가공스러운 고통으로 신음하는 예수님을 외면한 채 그들은 사형수의 몸에 벗겨진 옷을 네 깃으로 나눠가졌습니다. 당시에 사형수들이 착용했던 것들을 사형 집행하는 군인들이 취해가는 것은 하나의 관습이었지만 십자가에 고통당하는 이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분깃에만 눈이 멀어 누가 더 좋은 것을 가져갈지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은 이해하기 쉽지 않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남의 고통이나 불행에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즐기는 자를 사이코패스라고 합니다. 그들은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하고 공감능력이 결여된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들입니다. 이들에 의한 학교폭력 집단따돌림 그리고 언어폭력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영혼이 망가지고 삶을 포기합니까? 무서운 죄입니다.

 

35절에 십자가에 내려다 본 두번째 사람풍경입니다.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백성들이 서서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예수님을 구경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치 자신들은 십자가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방관자의 자세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과 며칠 전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며 열렬히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호산나를 외쳤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마음이 바뀌어 종교지도자들의 선동과 군중심리에 파뭍혀 총독 빌라도가 바라바와 예수님 중에 누굴 놓아주길 원하느냐?‘ 했을 때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외쳤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도록 주동했던 자들입니다. 이들의 죄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 비록 자기들은 마치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들인 것처럼 방관자가 되어 십자가를 구경하고 있을 뿐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공부도 못하고 조금 뒤떨어진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를 또래 친구들이 종종 괴롭혔습니다. 한 번은 수업 끝나고 함께 집으로 오는 길목에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눈치를 주고받더니 그 친구를 대나무 밭으로 밀어 넣고는 도망쳤습니다. 그 때 저는 참여하지 않고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몇 일 뒤 집단 괴롭힘을 당했던 친구의 어머님이 그날 참여했던 친구들을 불러서 혼줄을 내고 사과를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는 집단으로 괴롭히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억울하다고 울면서 그 어머니께 따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말리지 않고 구경하는 것도 함께 동조한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경했던 무리들도 사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어서 세 번째로 관리들의 태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리들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입니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너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맞춰 보라 네가 선지자면 이런 것쯤은 알 것 아니냐?‘ 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는 골고다 십자가 아래에서도 똑같았습니다. 35절에 보면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비웃으며 예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이들은 구경만 하는 백성들보다 훨씬 더 흉악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네 번째로 또 다른 한 무리의 군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면서 신포도주를 주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말합니다. 희롱하다는 말은 아이들이나 미성숙한 사람들이 하는 천박한 장난질을 말합니다. 아마 산헤드린 관원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들도 예수님을 희롱하는 말을 한 듯합니다.

 

더불어서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내려다 본 그 십자가 아래에 있는 사람들 풍경에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버린 10명의 제자들의 모습도 있습니다. 십자가 가장 앞자리에서 예수님의 임종을 지켜야 할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하고 끝내 그 자리에 오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로마 군인들이 자신들도 죽일까 봐 두려워서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을 지켜보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한 백부장도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발아래까지 와서 예수님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면서 예수님을 죽음을 슬퍼했던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 중 유일하게 요한이 예수님의 곁을 지켰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우편의 강도는 회개하고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부탁하고 그 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내려다본 그 현장에는 수많은 인간의 군상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양하게 반응하고 있는 사람풍경을 보고 계십니다. 질문하나 던져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다 볼 때에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주님의 눈에 비칠까요? 십자가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내 모습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각도로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나를 십자가 아래에 있는 누구의 모습과 가장 닮았다고 하실까요?

 

혹시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옷가지를 제비뽑아 가져간 군병들의 모습이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챙겨야 할 것에만 혈안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나에게는 없을까요? 십자가를 생각해도 아무런 감동이 일어나지 않고 그저 십자가는 주님의 것입니다는 생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인데 마치 나와 상관없는 십자가로 여기면서 내 삶에만 집중하면서 살고 있다면 예수님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체 예수님의 옷가지를 제비뽑아 가져간 군병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요?

 

아니면 구경만 하고있는 백성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한때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시다고 찬송했던 신앙고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의 기대감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서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그저 구경꾼으로 전락한 신앙인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데 구경꾼처럼 예배를 살펴보고는 오늘 찬양 잘하네... 아니면 오늘 예배 분위기 별로네, 혹은 오늘 설교 별로네 평가하는 그저 교회 마당만 밟는 구경꾼 신앙인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교회에서의 신앙과 세상에 나가서의 삶의 모습이 다르다면 기독교 신앙은 장식품에 불과한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이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 보자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구경꾼의 자리에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유대 최고 권력기관인 산헤드린 관원들처럼 세상에서 성공했고 나름 누릴만큼 누리고 있기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 성공을 누리는데 꺼려지기도 하고 더 출세해야 하는데 방해된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주님을 밀쳐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이 안 보여야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기에 주님을 내 마음의 왕좌에서 내쫓아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십자가의 예수님을 희롱하는 군인들처럼 살고있는 분은 없습니까? 주변에 들려지는 소리에 끌려 덩달아 기독교에 대해서 신앙인들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비난하는데 열을 올리는 그 대열에 나도 동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려움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그 현장에 아예 얼굴조차 내밀지 않고 숨어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는지요? 주님이 필요하다고 찾으시는데 나 살기 바쁘다고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한 제자들처럼...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자고 말씀하시는데 망할 것 같아 나 좀 내버려 두라고 그러나 신앙 양심상 너무 멀리는 가지 못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르다 결국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홀로 두고 후회만 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는지요?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께 받은 그 은혜가 너무 커서 죽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발끝 밑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그런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최소한 내가 주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할 힘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십자가 곁을 지켰던 나이 어린 제자 요한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주님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십자가 곁을 지킨 요한이 고마워 보라 네 어머니다하고 어머니를 부탁할 정도 제자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눈에 비쳐지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십자가 아래에서 죄를 짓고 있는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종종 목회를 하면서 한국교회에 10만 명 넘는 목회자가 있는데 그 중에 주님은 나를 어떤 목회자로 평가하고 계실지 두렵고 궁금할 때가 있었습니다. 매일 고분분투하고 있는 수많은 개척교회 목회자들, 생계보장이 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주와 복음역사를 섬기고 계시는 수많은 농어촌목회자들, 선교지에서 주님만 의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비교하면서 마음이 편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의 눈에 나는 어떤 목회자로 비쳐지고 있을까? 마지막 날 주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심판받는 날 주님은 나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실까? 두렵고 걱정이 됩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주님은 평가하시고 심판하실 것인데 그날 어떻게 감당하실지 생각하면서 사셔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기도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연약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고 예수님은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허물많고 부족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거울 앞에서 나의 신앙생활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 대고 합리화하면 영영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입사시험을 치루기 위해서 시험장엘 가 보니 차를 세울 곳이 없었습니다. 15분간이나 빙빙 돌아보았지만 시험시간은 다가오는데 차를 세울만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주차금지 구역에 차를 세워놓고 쪽지를 붙여놓았습니다. 저는 이 구역을 15분간이나 돌았습니다. 여기에 주차하지 않으면 저는 일자리를 잃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소서. 시험을 치고 나와 보니까 차에 딱지가 붙었습니다. 그리고 메모가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이 구역을 15년째 순찰하고 있습니다. 만일 오늘 이 딱지를 떼지 않으면 제가 일자리를 잃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사람은 다 환경에 따라 사정이 있고 입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삶의 풍경이 다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가 최선의 것을 선택합니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거스틴이 한 말입니다. 본질적인 것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엔 관용을 모든 것엔 사랑을!”

 

이 말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모두가 지켜야 할 절대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유연성과 관용으로 서로의 입장과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할 때는 본질적인 것이든 비본질적인 것이든 항상 사랑을 품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장에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서 예수님께 데려와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죄에 대해서는 돌로 치라 명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이 때 율법의 돌을 들었던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다 떠나고 여인과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여기에 율법이라는 본질을 지켜내는 정신과 그럼에도 생명을 살려내려는 사랑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으로 간음한 여인을 용서했다 하더라도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주님의 준엄한 율법적 명령도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려다 볼 때 다양한 삶의 풍경이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상황과 입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아무리 최선의 행동을 했더라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면 심판을 받습니다. 주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가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번 비쳐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는 신앙의 자리로 돌아오시기를 기도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108 누가복음75강(십자가에서 바라본 사람 풍경) 김성철 2026-06-28 13
107 누가복음74강(제목: 내 대신 십자가품팔이하신 예수님) 김성철 2026-06-21 30
106 누가복음73강(제목: 십자가를 향해 가는 고요한 마음) 김성철 2026-06-14 46
105 누가복음72강(제목: 실패를 극복하는 3가지 영적법칙) 김성철 2026-06-07 52
104 누가복음71강(제목: 일어나 기도하라) 김성철 2026-05-31 58
103 어버이주일 말씀 (제목 : 약속이 있는 첫 계명 = 부모 공경) 김성철 2026-05-10 90
102 어린이주일설교(제목: 두려움을 이기는 미래세대를 위하여) 김성철 2026-05-03 93
101 Welcome to 푸른초장 말씀(제목: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김성철 2026-04-26 109
100 남정규원로목사 출판기념회 말씀(제목 : 하나된 광주동광교회 꿈이 있는 100년을 향해) 김성철 2026-04-22 86
99 창림65주년 기념주일 말씀(제목: 꿈꾸며 온 65년 이제 새로운 미래로) 김성철 2026-04-22 87
98 누가복음70강(제목: 땅에서 섬기고 하늘에서 다스려라) 김성철 2026-04-15 111
97 2026년부활절설교(제목:만약 부활이 없다면...) 김성철 2026-04-07 101
96 누가복음69강(제목: 새 언약의 세 가지 의미) 성찬식말씀 김성철 2026-03-29 168
95 세례식주일말씀(제목: 내 안에 예수님이 살고 있습니다) 김성철 2026-03-22 111
94 누가복음68강(제목 : 만남은 하나님의 계획된 작품입니다) 김성철 2026-03-18 119
1 2 3 4 5 6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