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사도행전5강(제목: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들)
2026-09-13 06:08:10
김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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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5

제목 :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들

말씀 : 사도행전25~13

 

오늘 말씀의 제목은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세상에 소동을 일으키는 공동체였다는 점입니다. 교회가 소동을 일으켰다는 것은 타락해 가는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가 워낙 강력한 영적인 힘, 진리의 힘, 복음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주변을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 사도를 벨릭스 총독에게 고발할 때 그들의 고소 내용이 이러했습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24:5) 바울 사도가 가는 곳마다 소동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전염병처럼 복음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세상을 복음으로 전염시키는 자들입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세상을 복음으로 물들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공동체입니다. 성도가 불신자 집단에 들어갔습니다. 교회가 복음의 불모지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면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교회 안에 있는 복음의 힘이 세상을 소동 시켜 세상을 변화시키던지,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악한 영향력을 받아 세속화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중학교 때에 삼투압현상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삼투압현상이란 무엇입니까? 저농도에서 고농도로 물이 이동하여 서로 균형을 이루는 현상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농도가 짙을수록 옅은 주변의 농도를 흡수하는 현상입니다. 마치 중력과 같습니다. 태양계는 태양이라는 강력한 중력의 영향력 아래에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혜왕성 8개의 행성이 묶여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힘이 세상을 끌어당겨야 합니다. 교회의 진리의 농도가 짙고 윤리적으로 수준이 높으면 교회의 힘이 세상을 끌어당겨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러나 교회가 타락해서 세상의 수준보다 낮아지면 역으로 세상의 가치와 윤리와 문화에 흡수되는 교회가 흡수되어가는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됩니다. 이것을 교회의 세속화 현상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초대교회가 세상을 향해 일으킨 최초의 소동입니다. 이 소동이 왜 일어났는지를 배우면서 우리 교회도 초대교회와 같이 세상을 소동 시킬 수 있는 그런 강력한 진리의 공동체, 복음의 공동체, 성령으로 충만해서 세상을 복음으로 물들이는 부흥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영적 삼투압 현상이 우리 교회에도 발생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마가 다락방에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불의 혀처럼 임하시는 성령에 의해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곳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소동 시킬 수 있는 능력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할 때 나타납니다. 성령을 따라 말할 때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말들이 터져 나옵니다. 성령을 따라 말할 때 권능과 능력의 언어, 살리는 언어, 희망의 언어가 나옵니다. 그래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면 사람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자녀들을 살리고 싶습니까? 남편을 살리고 싶습니까? 아내를 살리고 싶습니까?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싶습니까?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십시오. 그러려면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생각과 내 감정과 내 의지를 주관하도록 날마다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5:16~17) 성령을 따라 행하면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길만이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자녀를 살리고, 내 이웃을 살리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언어는 살리는 언어, 생명의 언어, 기적의 언어, 부흥의 언어, 창조의 언어, 공감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호수아 610절에 보면 굉장히 깊이 묵상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 6일 동안 말하지 못하게했을까요? 혹시라도 불평과 원망과 불신의 말이 뛰쳐나올까 봐, 혹시라도 인간적인 말이 자동적으로 나올까 봐 미리 침묵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6일 동안 기도하고 묵상했다가 7일째 일곱 번 돌고 나서 그때 믿음으로 외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이 선포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보름달 같이 가득 찬 믿음의 상태에서 외치는 언어 거기에 능력과 기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말은 철옹성 여리고를 무너뜨립니다.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하라!’ 선포하면 태양도 달도 순종합니다.

 

9~11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새 방언이 나옵니다. 이 방언은 자신도 모르고 듣는 사람도 모르는 영적 방언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알아듣는 각 나라의 언어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영어, 불어, 스페인어, 독어, 터키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일어, 아랍어 등 15개 언어가 120명 성도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입니까?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언어학자도 타민족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려면 10~20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님들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괴물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언어는 괴물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으로 충만했던 사도들과 성도들의 입에는 괴물같이 어려운 다른 나라의 언어가 배우지도 않았는데 자동적으로 나왔습니다.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은 하나였던 인류의 언어를 여러 개의 언어로 나누어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마가다락방에서 하나님은 이제 15개의 언어를 한순간에 통일시켜버렸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큰일을 외치게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외국어로 말했느냐가 아닙니다. 그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선포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큰일이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음을 외치도록 하기 위해서, 아담 이후부터 구속역사를 만들어 왔고,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되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오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큰일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큰일을 성령님을 보내셔서 외치게 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전혀 외국어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5개국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외치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언어를 나누게도 하고 통일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순절에 15개 지방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그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15개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게 함으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땅끝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이방지역에도 교회가 세워지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15개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게 되자 어떤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6~8절 말씀입니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여기서 마가다락방에 모였던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방언을 받고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고자 문을 박차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성전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추리 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행동합니다. 몸이 움직입니다. 행동하는 신앙인이 됩니다. 성령 안 충만하면 지식으로만 끝납니다. 은혜도 머리에서 끝납니다. 가슴까지 내려오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은혜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게 하고 우리의 감정과 의지와 손과 발과 입까지 움직여서 행동하게 합니다. 순종하게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갈릴리 촌놈들의 입에서 15개 외국어로 유창하게 복음이 선포되자 예루살렘 성전에 모였던 사람들 안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의 입에서 하나님의 큰일이 선포될 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죄로 인해 어찌할꼬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날 3천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님! 불의 혀처럼 갈라져서 각 사람의 심령에 떨어진 그 불길을 아무도 막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갈릴리 촌놈으로 무시 받던 자들이었습니다.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들은 학식도 없고, 금과 은도 없는 가난한 자들이요, 미련한 자들이요, 능력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무시 받을 수밖에 없는 학벌 없는 갈릴리 촌놈들이요, 어부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자 세상을 소동 시키는 진리의 사람들,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사의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신학교도 없었고, 교회 건물도 없었고, 조직도 없었습니다. 은과 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기도의 능력 말씀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기도하면 옥문이 열리고, 그들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향해 일어나라고 말하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입을 열면 3천 명 5천 명 회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초대교회는 세상에 소동을 일으키는 성령의 공동체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끝으로 염병처럼 번지는 성령의 불길이 되어 변화의 파도를 일으켰고 마침내 로마제국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세상을 복음으로 물들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악한 영향을 받아 교회가 오히려 소동을 받는 분란의 공동체, 세속적인 공동체로 변질되어버렸습니다. 교회가 세상 가치관과 문화에 오염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없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2615~10일 사이에 전국 만 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교회 신뢰도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가장 신뢰하는 종교로 가톨릭을 꼽은 사람은 25.3%, 불교를 꼽은 사람은 24.4%였으나 개신교를 꼽은 사람은 13.6%에 그쳤습니다. 가톨릭과 불교가 2023년 조사에 비해 4~9% 증가한 반면, 개신교는 3% 가까이 하락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교회의 신뢰도가 가장 낮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교회의 영향력이 쇠퇴할 정도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어떡하면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다시 초대교회처럼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세속화되어 가는 교회가 말씀 위에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중세 때에 유명한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어느 날 교황청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황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세계 각국으로부터 오는 마차들이 교황청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마차들에는 수많은 금은보화가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이때 교황이 자랑스럽게 아퀴나스에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 사도는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라고 말했지만, 이제 우리는 금과 은을 저렇게 풍성하게 가졌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보내오는 저 금은 보화를 보십시오. 이 놀라운 건물과 장식을 보십시오.” 이 소리를 듣자 아퀴나스는 염려하면서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를 지었습니다. 금으로 기둥을 만들었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꾸몄습니다. 실로 엄청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에게는 땅도 많이 있습니다. 건물도 많아졌고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은과 금도 우리에게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이제 우리에게 없습니다.”

 

중세교회처럼 오늘 현대교회가 그렇습니다. 금과 은과 보화가 가득합니다. 좋은 시설, 좋은 음향, 좋은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교회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없습니다. 기도의 능력이 없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없습니다. 전도하러 가보면 세상이 교회를 향해 얼마나 비웃는지, 얼마나 조롱하는지, 얼마나 냉소적인지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옴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전도 한번 해 보십시오. 사람들의 그 따가운 시선, 냉소적인 웃음을 경험해 보십시오. 그러면 교회의 현실이 느껴지고, 한국교회의 실상이 느껴집니다.

 

좋은 시설, 좋은 음향, 좋은 건물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의 능력입니다. 말씀의 능력입니다. 예배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왜 성령님께서 초대교회처럼 현대교회 안에도 그렇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의 태풍을 일으키지 않을까요? 왜 불같은 성령께서 현대교회를 뜨겁게 달구지 못할까요? 우리 안에 세속의 때들로 너무나 깊이 찌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목회자들 안에 세속의 욕망이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성도들 안에 덕지덕지 세속의 때가 끼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은과 금으로, 조직의 힘으로, 치밀하고 화려한 프로그램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를 향해 바울 사도가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 이는 아무 육체로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무엇을 자랑 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 한마디로 우주 만물을 창조해 내신 분이 세상의 금 은 보화가 없다고 일할 수 없겠습니까? 사람의 조직력이 약하다고 하나님께서 실망하시겠습니까? 교회에 고귀한 신분을 가진 권력자의 힘이 하나님의 능력을 앞설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프로그램이 빈곤하다고 성령의 불이 꺼지겠습니까? 교회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능력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믿음의 능력, 기도의 능력, 복음의 능력이 살아나면 세상을 소동 시키는 모든 준비는 끝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세상을 끌어당깁니다. 세상에 소동을 일으킵니다. 어둠에 사로잡힌 세상을 빛으로 인도하고, 사탄 아래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충만하여 각국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들은 외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2~13절 말씀입니다.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늘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한 편에서는 이 어찌 된 일이냐하며 충격을 받고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성을 깨달으면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과 표적을 보고도 새 술에 취하였다고 거부하는 무리들도 있습니다. 세상은 항상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영접하든지 거부하든지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문둥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내며, 귀신을 쫓아내면서 복음을 증거 해도 그들은 귀신의 힘으로 표적을 행한다! 그는 미쳤다! 거부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그랬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핍박하고 죽이려고 돌을 던지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한 번은 강력한 성령의 능력과 권세로 베스도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자 베스도는 오히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26:24) 하면서 바울이 증언하는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면 어떤 사람은 거부하고 냉소를 보여도,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듣고 어찌할꼬 탄식하며 회개하는 심령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복음 앞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서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거부는 초대교회의 성령 충만한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복음을 조롱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거부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교회를 향한 멸시와 핍박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복음을 붙잡고 거침없이 담대하고 나아갑시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택한 자들이 아직도 이 도성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28:31)로 끝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거침없이 담대하게 증언해야 합니다. 우리 광주동광교회가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성령충만함 받기를 소원합시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고 우리에게 없는 것은 성령충만함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성령, 불의 혀와 같이 임재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다면 우리 광주동광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교회, 세상을 소동 시키는 영향력 있는 교회, 가장 행복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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