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가을특새 아브라함2
제목 : 약속의 땅에도 기근은 오는가?
본문 : 창세기12:10~20
결단찬양 :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많은 성도가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이라면 그 땅은 틀림없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가라고 했다면 그 사명의 땅은 틀림없이 기름지고 풍년이 가득할 거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인자하심이 많으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삶의 터는 행복이 가득 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들의 이런 믿음을 흔들어 버립니다. 10절 말씀입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갔습니다. 6~9절을 보면 가나안 사람들이 이방인 아브람을 적대시하고 무시하고 핍박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점점 세겜에서 벧엘 동쪽 산으로 그리고 남방으로 옮겨 가는 것을 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7절)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은 이 약속을 붙잡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까지 온 것입니다. 그것도 심한 기근이었습니다.
목축을 주로 하던 당시에 기근은 우리 시대로 표현하면 IMF 같은 최악의 불경기가 왔음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해서 왔는데 기근이라뇨? 이게 말이나 됩니까?” 아브람은 실망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소나기는 피해 가라’는 말처럼, 그는 일단 애굽에 가서 잠시 머물다가 기근이 지난 후에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고자 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도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먼저,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올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약속의 땅에서도 기근이 올 수 있다고 답합니다. 그것도 보통 기근이 아니라 생계를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기근입니다. 왜 약속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람에게 이런 기근 닥쳐오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브람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복의 근원, 믿음의 큰 그릇으로 빚으시기 위해서 시련의 과정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깨다는 것은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람을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하시고 그 땅을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살아가는 사명의 삶에도 고난이 있고, 실패가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이유는 믿는 자들에게 썩어질 세상적인 것에 소망을 내려놓고자 함입니다. 대신에 하늘의 것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훈련과 연단을 통해 우리는 보이는 세계의 허무함과 무가치 그리고 그 한계를 알고 보이지 않는 하늘의 세계, 영적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무력함과 한계를 알고, 죄성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 분으로부터 복음을 사랑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구원의 세계를 앙망하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서 진정한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인 복, 건강의 복, 자녀의 복, 세상에서 성공하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복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복의 요소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복을 주시면서도 복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을 바라보도록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세상 것을 내려놓는 훈련을 받게 하십니다. 이것이 약속의 땅에 기근이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근을 보는 관점입니다.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종류의 인생의 기근을 겪을지라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영광스러운 일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15절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기근의 날은 기도할 때입니다. 기근의 날은 하나님이 하시는 영광스러운 일을 만날 때입니다. 실패의 때에 환난의 날에 우리는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을 향해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니이까 그 부모니이까. 이 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이것이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브람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가는 것이 정당한가?’ 라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때에 따라 다릅니다. 성경을 볼 때, 가야할 때도 있고, 남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근의 때에 이삭에게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약속의 땅에 남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야곱에게는 기근의 때에 두려워하지 말로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 앞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묻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근의 때에 아브람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 정당했습니까? 오늘 본문에 기초해 볼 때 아브람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간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그 어떤 언급도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람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적대감을 가지고 힘들게 해도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가나안 토착민들이 핍박해도 힘들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가나안 땅에 거주했습니다. 그런데 심한 기근 앞에서 예배가 무너지고 기도의 단이 무너졌습니다. 상황이 너무 힘들어 기도할 마음까지 사라진 것입니다.
상황이 너무 힘들면 그 상황이 생각과 감정을 장악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힘든 상황이 믿음의 삶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습니까? 고난의 환경이 사명의 삶을 회피하도록 몰아가는 경우가 있습니까?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싶지만 상황과 환경의 기근이 그 자리를 잠시 떠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까? 어떤 분은 그것이 경제적 기근일 수도 있고, 질병의 기근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부부관계가 성도와의 관계 혹은 직장에서 동료나 상사와의 관계가 약속의 땅에서 만난 최악의 기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근이 다가올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당장 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벗어나고자 집중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통해서 내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자 하시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 상황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이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인간적인 생각을 품고 행동할 때 오히려 더 큰 위기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기근의 때일수록 나를 부르시고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김명선 목사님이 작자작곡한 시선이란 찬양은 오늘 본문에 대한 가장 명료한 해답을 줍니다.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돌이키사 하늘의 꿈 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대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고난의 때에 시선을 상황이나 나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일하기 시작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람은 기근이라는 상황 앞에서 결국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으로 갔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만 옮겼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적으로는 하나님과 멀어졌음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이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순식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아브람은 이제야 살았다고 안심이 되고 심령이 평안했습니까? 어찌 보면 가나안에서 만난 기근의 상황보다 오히려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12-15절에 보면 아브람이 아내 사래를 누이로 속였다가, 아내를 바로 왕에게 빼앗기고, 홀애비 신세가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람은 애굽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 두려워서 아내를 누이로 속였습니다. 그래서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아내를 빼앗기는 큰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기근에 양식 좀 얻을려고 했다가 사랑하는 아내까지 빼앗기고 아브람은 큰 낭패를 보았습니다. 차라리 기근에 굶어 죽는 편이 낫지, 사랑하는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겼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는 밤새 울었을 것입니다. "이 못난 자식아, 아내 하나도 못 지키고 너도 남자냐" 아브람은 그때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기근을 만났다 해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나게 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17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하나님은 바로와 그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감히 하나님이 택하신 믿음의 조상을 잘못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서 바로가 깜짝 놀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보내주었습니다. 13:2절에 보면 많은 가축과 은금 보석까지 내주었습니다.
아브람으로서는 크나큰 위기를 넘긴 것입니다. 사실 아브람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개입하셔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 편이 되어 주셔서 철저히 보호해 주셨습니다. 12:3절 말씀에서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내리고 아브람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신다”고 했는데 그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연약해서 신실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아브람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의 특권이요 은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아브람이 완전한 자였기 때문에 그를 복의 근원이요,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에 기인했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택함 받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나의 비겁함과 연약함으로 인하여 나타난 결과까지도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다면 어찌 우리의 오늘이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실수와 허물과 죄 덩어리이인 모습 속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때로 우리가 환경과 상황에 무너져서 믿음의 길에서 잠시 떠나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수해도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만회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부르신 그 약속의 땅에 하나님의 시퍼렇게 살아서 우리를 이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의 땅에서 만난 고난은 사실 우리가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고난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그러므로 내가 서 있는 약속의 땅에서 만난 기근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온 사명의 땅에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직면했더라도 회피하지 맙시다. 내가 계산하지 못했던 기근이 왔다고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 기근은 하나님이 보낸 기근일 수 있습니다. 그 실패는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 섭리의 손길일 수 있습니다. 그 환란과 고통이 나를 더 성숙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훈련일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택한 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십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부르신 땅에서 믿음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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