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사도행전7강(제목: 어떻게 구원받는가?)
2026-09-30 13:53:17
김성철
조회수   9

 

사도행전7강

제목 : 어떻게 구원받는가?

말씀 : 사도행전 2장22~33

 

추석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풍성하고 부요한 가을의 절정인 추석의 혜택이 우리 마음과 삶에도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한가위의 풍성한 혜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한 복음의 혜택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1:3) 하나님은 우리가 영접한 예수님을 통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공급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가을의 한가운데인 중추절의 풍성함보다 더 풍성하고 부요한 하늘의 신령한 복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의 자녀들에게 공급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에 선포된 설교 내용입니다. 그 설교 내용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어지는 구원의 혜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천국 복음이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완성되었고 그 완성된 복음이 성령강림을 통해 어떻게 각 사람에게 적용되는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더불어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증하고 아직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지 못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는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구원은 성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기로 계획하신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로 시작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는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히 그중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존귀하고 보배로운 직무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잘 관리하고 다스리는 청지기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해진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반역을 시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질서로 세워주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교제가 끊겼고, 그 결과 즉시로 죄의 종노릇하며 사망의 권세 아래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구원의 큰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 15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내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 가운데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구원자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더욱더 구체화 되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모든 인류에게 복을 주는 메시야를 보내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다윗 왕 때에 더 세밀하게 약속되었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상7:16)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할 영원한 왕이신 메시야를 다윗 혈통을 통해서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지속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이사야 7장 14절에서는 아예 메시야가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게 될 사건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구약의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계획을 마침내 신약 시대에 완성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고자 오셨습니다.

신약의 첫 시작은 마태복음 1장 1절의 선포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님은 만민에게 복을 줄 아브라함의 씨로, 영원한 왕권을 상징하는 다윗의 후손 요셉과 정혼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나셨습니다. 신약의 시작은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오신 사건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1:9~11)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에 따라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참 빛으로 구원의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22~23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은 구약에 예언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다윗의 왕위를 영원토록 계승할 예수님을 미가서에 예언된 장소인 베들레헴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 그분은 너무나 하찮은 인간 조건을 가지셨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난했습니다. 학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촌 동네 나사렛 출신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메시야로 인정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나오는 능력은 비상했습니다.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고, 문등병자가 고침받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귀신이 쫓겨나고, 물 위를 걷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죽은 자를 살려냈습니다. 그분이 가르치는 말씀에는 권세가 있어서 사람들의 심령을 칼로 찌르듯 변화시켰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성부 하나님이 구약에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메시야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3년여 동안 함께 동거동락했던 제자들은 확신있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과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그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 사로잡혔다! 갈릴리 촌놈에게서 무슨 선한 것이 있겠냐? 그는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있지 아니하냐” 하면서 멸시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로마인들에게 넘겨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못 박아 죽였다고 책망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빌라도도 아니고, 로마 군병들도 아니고, 그 날 현장에 있던 군중들도 아닌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외칩니다. 이 말은 ‘너희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것이다’는 뜻입니다. 본래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죽을 이유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은 우리 인간을 대표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기 위해서 성부 하나님이 그렇게 계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죽음을 대속이라 부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나의 죄 때문임을 깨닫고 영접한 사람은 주홍 같은 죄가 눈과 같이 희어지고, 진홍같이 붉은 죄가 양털같이 희게 됩니다. 십자가는 어떤 사람의 죄든지 용서하는 힘이 있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찬송268장) 나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관계인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다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 증언합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 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25~28 ) 다윗은 내 앞에 계신 주를 보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고 부활하실 주님을 보면서 자신의 육체도 희망에 거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다윗은 오실 메시야 때문에 자신이 영생할 것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자신의 육체도 부활할 것을 바라보면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이 예언하고 고백한 대로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베드로의 증언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32절)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두 눈으로 보았고 함께 식사했고 대화했고 만져보았습니다. 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까? 십자가에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만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의를 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 받았지만 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의를 이루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죽으심까지의 삶 전체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우리의 의를 위해 하나님께 순종한 삶입니다.

로마서 5:19절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에 순종하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의인이 되어 영생을 얻게 됩니까? 예수님이 모든 율법에 순종하였기에 그 의의 열매로 부활하셨고 예수님의 완성하신 그 의를 우리가 믿음으로서 우리도 의롭다고 여김받아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게 감사하노니”(고전15:55~57))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들은 반드시 사망을 이기고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의 새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되는 복음이 완성되었습니다. 구원의 내용이 온전히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셋째,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이 완성한 복음을 택한자들에게 적용시키고자 오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마가다락방에 강림하셨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신약의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천국 복음을 완성하셨다면, 이제 성령님은 이 구원의 복음을 모든 사람들이 믿도록 하기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38절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오순절에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왜 오신 것입니까? 택한 자들에게 복음을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성경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셔서 인간을 살려내는 복음의 내용을 다 성취했다 할지라도 이 복음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 이 복음이 믿어지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믿어지든가요?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이성과 상식적 논리를 사용하여 믿었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복음을 믿을 수 없기에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홍수가 났습니다. 한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헤엄을 치지 못해 물속에 잠겨 익사 직전에 도달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급히 구조 헬기를 보냈습니다. 헬기에서 구조 밧줄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 밧줄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겨우 심장만 조금씩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헬기에서 구조대원이 밧줄 타고 내려와서 이 사람을 끌어안고 함께 구조헬기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상황을 에베소서 2장 1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을 힘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헬기로 상징되는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의 밧줄을 내렸지만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이 그 밧줄마저 잡을 힘이 없기에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그 영혼을 불가항력적 은총의 힘으로 붙잡아서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은 결코 복음의 소식을 깨달을 수 없고 스스로의 힘으로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역사하시면 허물과 죄로 죽은 그 사람 안에 강력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회개는 성령의 역사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은 이 사실을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오순절날 성령충만함을 받아 설교할 때 그날 삼 천명의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물었습니다. 누가 그들의 마음을 찌른 것입니까? 베드로가 설교할 때 성령께서 그 말씀 속에 역사하사 그들의 가슴을 찌른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13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그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활동하시면서 택하신 자들의 마음을 찌릅니다. 날선검과 같이 예리하게 움직여서 자신의 존재적 가련함과 한계 비참함을 보게 합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이 세상이 얼마나 죄로 가득차 있는지,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자신이 무능무지한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죄의 길, 교만의 길, 반항의 길을 걷고 있음을 보게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아가다가 결국 저주받아 죽게 될 죄의 결과를 보게 합니다.

 

결국 성령을 통해 마음에 찔림을 받아야 회개합니다. 그러면 누가 마음의 찔림을 받아 회개합니까? 창세전에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예정된 사람만이 복음에 반응합니다. 어떻게 반응합니까? 회개로 반응합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란 단순히 “I am sorry" 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회개란 “Repent”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로부터 확실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나 먼 나라로 갔다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만 흘리며 뉘우치고 있다면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아버지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다시 아버지 집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끊을 것은 끊고 돌이킬 것을 돌이키고 그렇게 해서 내 몸을 움직여 다시는 죄의 자리에 있지 않고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자리로 옮겨 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지적인 회심에서 삶의 회심까지 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진짜 회개는 가치관의 회개 삶의 목적과 방향의 회개뿐만 아니라 삶의 회개인 성화의 열매까지 맺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요구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성령님은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성화를 돕습니다. 그러나 성화에서 실패한다고해서 우리의 구원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을 없다고 했습니다. 지적으로 회심한 사람은 반드시 성령의 선물로서 성화의 열매를 맺습니다. 만약 중생했는데 성화의 열매가 없다면 그 사람의 거듭남은 가짜입니다. 성령님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죄 속에 뒹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만약 계속 죄를 범해도 가만히 둔다면 그 속에 성령께서 내주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거듭난 사람을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시고 끝까지 인내함으로 견디게 해서 구원의 확신에 이르게 합니다. 뿐만아니라 마지막으로 천국까지 인도해서 우리를 영화의 단계까지 끌고 가십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하는 자들이 받게 되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복음을 적용하게 하시는 성령충만함을 받아 지적인 회심단계에서 삶의 회심까지 감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약속된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