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4강
제목 : 신앙교육의 최고의 교사
본문 : 사무엘상 2장 12~26절
결단찬양 :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신앙교육의 최고의 교사’입니다. 흔히 자녀의 신앙교육을 교회에 맡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학교가 자녀교육의 최고의 학교요 교회학교 교역자나 선생님이 자녀교육의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자녀의 신앙교육의 최고의 학교는 가정이고 자녀의 신앙교육의 최고의 선생님은 부모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홉니와 비느하스를 양육했던 엘리 제사장의 가정교육과 선지자 사무엘을 양육했던 한나의 가정교육을 비교하면서 참된 신앙교육이란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구약의 제사장 제도는 레위 족속 가운데 아론의 직계 후손들이 계승하는 세습제였습니다. 엘리는 아론의 직계 후손으로 대제사장이었고,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일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행실이 나빴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불량자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벨리알의 아들’이란 뜻으로 극악하고 패역하며 무가치한 자들이란 뜻입니다.
13절~16절까지는 이들이 얼마나 행실이 나쁜 불량자들이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먼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 원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로 드린 고기는 일단 삶은 후에 율법에 따라 ‘가슴과 뒷다리’를 제사장 몫으로 취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인들을 시켜 고기를 삶는 중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찔러서 걸려드는 것을 가져갔습니다. 한마디로 먹고 싶은 부위를 원하는 대로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제물은 먼저 하나님의 몫인 기름을 번제단에 태워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야 비로소 제사장 몫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고기를 강제로 가져갔습니다. 삶은 고기보다 구워 먹는 고기가 맛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드려지기도 전에 제물을 먼저 탈취한 것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너무나 큰 죄에 해당됩니다. 둘째로 22절에 보면 그들은 성소에서 섬기는 여자들과 동침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소를 모독하는 무서운 죄악이었습니다. 이 죄는 너무나도 커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결심하기에 이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겁 없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무시하고 함부로 하나님의 성소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고 코멘트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전혀 여호와를 몰랐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들은 제사장 집안에서 어렸을 때부터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의식은 있었지만 인격적으로 하나님은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의 가정에서 세습적인 신앙, 곧 모태신앙을 가졌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론의 직계 후손으로 세습된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홉니와 비느하스의 신앙은 아마도 이런 경우와 같을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의사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는 의사라는 의식이 너무 강해 이제는 개인병원까지 설립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병원 허가를 내주는 의료기관 공무원이 그 사람에게 묻습니다. “의사 면허증을 보여주시오.” 그런데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의사 면허증 같은 건 없습니다. 그게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할아버지는 유명한 삼성 병원 원장이셨고, 우리 아버지는 서울의대 교수가 아닙니까? 또한 우리 어머니는 간호대학 학장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삼성 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번 확인 해 보세요” 그러면 관계 부처 공무원이 감동 받고 “아 그렇군요! 대단한 의사 가문에서 태어났네요!” 그러면서 개인병원 설립을 허가하겠습니까? 아마도 정신병자 취급하거나 아니면 술 취한 사람으로 여기고 쫓아낼 것입니다.
성경은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부모님을 가졌다 할지라도 신앙은 혈통으로 유전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해 줍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과 이삭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삭을 통해서 흘러갑니다. 야곱에게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이 태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는 야곱을 통해서 흘러갑니다. 혈통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죄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한결같이 자신 안에 있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합니다. 그리고나서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이런 과정 없는 신앙은 다 가짜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엘리의 두 아들처럼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아무리 부모님이 목사님이고 선교사님이고 장로님이라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다면 사람 앞에서 종교 생활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독교문화를 경험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생활하는 자세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눈이 없는 곳에서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욕망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망령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은 패망의 길이요 멸망의 길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서 여호와를 아는 참된 지식을 가지고 경건하게 신앙생활하게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 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우고자 하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살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인생을 형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지름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똑똑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엘리의 두 아들처럼 순식간에 망가지는 것입니다. 이중적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속이고 사람들을 속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믿음의 세대로 세우기 위해서 저는 두 가지를 권면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주일 저녁에 가정예배를 권하고 싶습니다. 주일에 받은 은혜를 가정예배를 통해서 자녀들과 식탁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아니면 일 주일에 한 번 성경 1장 읽고 큐티 나눔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솔직한 마음을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고백하고 자녀들도 그 말씀 앞에 서서 자신의 기도제목을 나누는 것입니다. 부모님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나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는지 신앙고백을 자녀들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온 가족이 주일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임재하십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공예배를 두렵고 떨림으로 준비된 마음으로 온 마음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소홀히 하고 부모님들이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예배드리면 자녀들은 그 모습을 배우게 됩니다. 아! 예배라는 것이 다 종교적 행사구나! 내 삶의 형편에 따라 드리는구나! 하나님은 없구나! 그냥 기독교 종교행사야! 자녀들은 부모님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부모님의 언어에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느끼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 광주동광교회의 예배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살아있는 예배가 되기 위해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보이십시오. 부모가 예배를 멸시하면 자녀도 예배를 멸시합니다. 예배 중에 함부로 자리를 옮기지 마십시오. 예배 중에 전화 받지 마십시오. 정말 경건하게 하나님 앞에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 하나하나의 모습이 자녀들에게 교육이 될 것입니다.
22~24절 말씀입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 하게 하는도다”
엘리의 두 아들은 회막문의 여인과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마치 “하나님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어! 봐라! 우리가 이런 짓을 해도 무사하잖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우린 이미 죽었겠지? 봐라 심판 같은 것은 없어!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니야! 예배는 조상들이 해 오던 전통적인 종교행사에 불과해!”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들은 제사장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앞으로 국가적인 무서운 재앙을 몰고 올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 대제사장은 두 아들의 죄를 심각하게 여기고 율법대로 치리하지 않고 가벼운 책망과 훈계만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자식은 귀여운 법입니다. 그러나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절대로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대로 한다면 엘리는 두 아들은 사실 여부를 조사한 후 그것이 사실이라면 직분을 빼앗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의 죄는 돌이킬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원래 제사장의 직분은 죄와 싸우는 직분입니다. 광야 시대 때 레위 지파만 우상 숭배에 가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명에 따라 우상숭배한 자기 동족을 칼로 죽였기 때문에 레위 족속이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자기 가족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가족에게 칼을 겨누어야 합니다. 엘리는 일단 아들들이 입고 있던 제사장의 옷을 벗기고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여야 했습니다. 그러면 가문도 살고 이스라엘 민족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엘리는 이것을 하지 못해서 후에 두 아들은 한 날에 전쟁터에서 죽고, 자신은 목이 부러져 죽고 후손들은 제사장 직분을 빼앗기게 되는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고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의해서 처참하게 짓밟힘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망령된 행실 뒤에는 자녀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엘리 제사장의 죄가 숨어 있습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에는 부모님의 책임이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왜 엘리의 두 아들들이 제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까? 부모의 삶 자체가 자녀들에게 큰 영향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이 죄를 지을 때 엄격하게 훈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잠언서 22장 15절을 보면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미련한 것이 와서 고집불통으로 죄의 길을 선택하면 징계의 채찍을 때려서라도 아이의 마음에 있는 미련한 것을 꺾어야 합니다. 잠언 23장 13~14절 말씀입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사랑의 매를 들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매에 감정이 실려서는 안 됩니다. 감정이 담긴 책망과 책벌은 구타이지 징계의 매가 아닙니다. 징계의 매도 격이 있어야 하고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칠 때 자녀들은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바울이와 다니엘을 키울 때 징계의 매를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나 매를 든 후에는 반드시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이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귀엽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 안에 죄가 스며들지 못하게 징계의 채찍을 들어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물론 미성년자로 부모님의 지도와 보호아래에 있는 기간의 때의 교육입니다. 부모의 가르침 아래에 있던 때에 절대로 자녀들 안에 있는 죄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우리나라 어머니 중 한석봉 어머니를 참으로 존경합니다. 아들이 글에 재주가 있는 것을 알고 일찍부터 절에 보내어 스님 밑에서 글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석봉이가 한 번은 추운 겨울날 떡 장사하면서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어 하룻밤만 어머니와 함께 하고 싶어서 절에서 내려와 버립니다. 추운 겨울날 밤중에 아들은 주무시는 어머니를 반가운 목소리로 “어머니 저 석봉입니다” 하고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 눈물이 났고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도 그립던 아들을 얼싸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꾹 참고 엄한 목소리로 “누구냐” 묻습니다. 아들이 “어머니 석봉이가 왔습니다” 어머니는 “아직 돌아올 때가 안 됐는데 어미와 약속한 말을 잊었느냐? 당장 돌아가거라”하고 책망했습니다. 석봉이는 “간 밤에 꿈자리가 사나워서 어머님이 걱정스러워서 왔습니다. 그리고 글씨도 이 정도면 꽤 배웠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그래 그러면 방으로 들어와서 어디 시험해 보자” 그리고는 그 유명한 불을 꺼버린 채로 껌껌한 어둠 속에서 어머니는 떡을 썰고 아들은 그동안 배운 글씨를 씁니다. 다 한 후에 촛불을 꼈더니 어머니의 떡은 크기나 두께가 조금도 다르지 않았고 가지런했지만 아들의 글씨는 이러 저리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아들의 못난 모습을 책망하면서 그 밤중에 다시 절로 보냅니다. 이것이 후에 한석봉이가 중국에까지 동양 최고의 명필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진중한 가르침이 있다면 분명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를 한나의 자녀교육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18~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여기 우리는 한나가 어떻게 아들 사무엘을 양육했는지 보게 됩니다. 한나는 아들에게 아무 옷이나 입히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흰색 세마포 에봇 옷을 입혔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의 에봇은 색실로 만든 화려한 옷이었던 것에 반해 일반 제사장 겉옷은 그냥 세마포로 만든 흰색 에봇이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어렸지만 흰색 세마포 에봇을 늘 착용하면서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갖도록 도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렸을 때부터 성전의 법도와 규례를 따르도록 한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제사장 흉내를 내면서 자라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나는 끊임없이 아들이 하나님을 참되게 섬기는 제사장이 되도록 눈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한나의 자녀교육 방법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무엘이 당시 타락하고 부패한 제사장들 틈에서도 어떻게 나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못된 사환들을 따라다니면서 고기 한 조각이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했을 텐데 말입니다. 아니면 엘리 두 아들의 못된 행실에 물들기 쉬웠는데도 사무엘은 전혀 그런 것에 영향받지 않고 26절에 보니까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했습니다. 사무엘은 경건하게 자랐습니다. 이런 경건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어머니 한나의 신앙교육과 기도 덕분이라고 봅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뒤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곧바로 재판에 회부된 후에 1910년 2월 14일 공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때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께 어머니 조마리아가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거라.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한국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들을 가진 어머니는 알 것입니다. 자녀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지 말입니다. 그런데 안중근 어머니는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최근 역사학자들이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의 편지를 발견하고 안중근 선생의 삶의 영향력을 끼쳤던 어머니 조마리아의 삶을 새롭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기도와 엄격한 교육 속에서 영향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의 인생을 아름답고 축복되게 세우고 싶습니까? 부모님의 신앙교육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나고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자녀들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세상적인 지식이 늦더라도 신앙교육만큼은 철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자녀의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잠언서 1장 6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고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녀는 세상의 모든 지식의 근본을 깨닫게 되고 인생살이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잔머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잔재주는 한계가 있습니다. 진리에서 나오는 성실한 인격과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혜안을 가진 자만이 세상에서 오랫동안 승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 할 때에 지혜는 열리고 삶의 복의 문은 열립니다.
저는 믿습니다. 자녀들의 최고의 학교는 가정이고 자녀들의 최고의 신앙교육의 선생님은 부모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부모님의 삶의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부모님을 신앙의 교과서로 삼아서 그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신앙으로 세상을 승리하는 법을 배울 것이며 기도의 능력 믿음의 능력으로 형통의 문을 여는 법을 터득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광주동광교회에 속한 모든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신앙의 좋은 교사가 됨으로 자신의 삶에 하늘의 축복의 문을 열어주는 은혜의 통로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엘리의 교육법은 가문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길입니다. 한나의 교육법은 가문도 살리고 나라도 살리는 길입니다. 우리 광주동광교회 안에 많은 믿음의 명문 가정들이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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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 26년맥추감사주일 (제목 : 만 가지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 김성철 | 2026-07-05 | 139 | |
| 108 | 누가복음75강(십자가에서 바라본 사람 풍경) | 김성철 | 2026-06-28 |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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