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사도행전2강
제목 : 증인의 삶과 그 영광
본문 : 사도행전 1장 6~11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나서 바로 승천하지 않으시고 40일 동안 세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먼저는 많은 제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셔서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 분부하셨습니다. 복음이 선포되고 복음을 영접한 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으로 세례받을 준비를 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40일 동안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부탁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계승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부탁받았던 그 일을 우리도 부탁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일을 계승 받은 사명인 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것을 두 자로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우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증인들입니다.
증인이란 헬라어로 “마루투스(μάρτυς)”입니다. 영어의 순교자(martyr)란 단어가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증인이 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도 “증인”의 자리에 서기를 꺼려합니까? 경찰서에 출두해야 하고, 때로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시간의 손해도 보고, 심지어 증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보복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운전하다보면 사거리에 종종 사연이 적힌 프랑카드가 걸려있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증인을 애타게 찾는 문구입니다. 많은 사례를 하겠다고 합니다. 증인으로 서주어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증인의 자리에 섣불리 서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간을 투자하고 때로는 반대편 가해자로부터 협박을 당할 수 있고 경찰서에서 책임있는 증언을 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증인은 관객이 아닙니다. 증인은 구경꾼이 아닙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그 분의 모든 말씀과 기적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보았던 제자들에게 종교지도자들이 이렇게 협박했습니다.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그러자 제자들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20)고 고백합니다. 사건의 목격자인 증인은 성실하게 거짓 없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살고 죽는 문제라면 더욱더 진실하게 헌신적으로 본 사실을 그대로 말해 주어야 합니다. 증인은 그렇게 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법정에서 위증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복음의 증인도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중요한 사명을 떠맡은 사람입니다. 증인의 막중한 책임을 느꼈던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명을 중대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 증인으로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살도록 하기위해 성령님을 보내서 우리에게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우리는 그 현장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2000년 전의 그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사도들이 두 눈으로 본 것처럼 우리도 확실하게 믿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기도의 체험 믿음의 체험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왜 믿어집니까? 왜 기도의 체험, 믿음의 체험을 하고, 구원받았다는 은혜의 체험을 하게 하신 것입니까? 증인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마르투스(μάρτυς)로 순교자적인 자세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증거하는 증인들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증언하는 복음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파멸해 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어떤 죄도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위대한 희망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증인의 삶을 기쁨으로 그리고 헌신적으로 충성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증언하도록 부름 받은 증인들에게는 네 가지 삶의 자세가 있어야 함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증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전달하면 안 됩니다.
6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먼저는 내 생각과 내 견해를 강하게 개입시켜서 말씀을 왜곡해서 전달하면 안 됩니다. 이단이 누구입니까? 성경 말씀을 자신들의 견해에 맞추어서 더하고 빼서 이만희의 복음을 만들고, 문선명의 복음을 만들고, 안산홍의 복음을 만드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증인은 기록된 성경을 원어와 문맥에 맞추어 올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6절에 보면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이스라엘 나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나타나셔서 “The Kingdom of God” 에 대해서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The Kingdom of Israel”로 오해해서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와 제자들이 말한 “이스라엘 나라”는 다른 나라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는 곧 이스라엘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제자들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 왕 때처럼 위대하게 회복시켜서 전 세계를 다스리는 나라가 곧 하나님 나라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잘못된 해석입니다. 그들은 유다이즘에 갇혀서 철저히 이스라엘 중심의 하나님 나라를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중심적 생각과 기준이 강하면 성경에 기록된 내용도 왜곡하여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마저 변질시킵니다.
지금 제자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스라엘 나라로 오해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증인은 성경이 말씀한 것을 문맥 속에서 올바르게 해석하고 올바르게 적용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1장 9절에 말합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렇습니다. 증인은 기록된 말씀을 다르게 전하면 안 됩니다. 증인은 사건을 본대로 들은대로 기록된 대로 증언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듣는 사람이 삽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아름답게 세워집니다.
둘째로, 증인은 때와 시기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야 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증인은 자기가 원하는 때와 시기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주권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면서 살다보면 하나님의 때와 시기에 대해서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뭐하시는가? 내 상황은 이렇게 급한데, 나는 지금 죽게 되었는데, 내 자녀가 지금 쓰러져 있는데, 지금 직장을 잃었는데, 빚을 갚아야 하고 이자 낼 돈도 없는데 주님 지금 도와주셔야지요! 그래서 우리도 제자들처럼 주님께 질문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자기 중심적인 내 나라에 관심이 집중되면 때와 시기도 못 맡깁니다. 내 때와 내가 원하는 시기에 주님이 응답해 주셔야 한다고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증인으로 사는 성도는 때와 시기마저도 하나님의 선한 주권에 맡깁니다. 하나님은 때와 시기가 되면 증인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 주권을 위임하지 못하고 내 때와 시기에 집착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내 원하는 대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면 문제는 더욱더 복잡해집니다. 아브라함이 때와 시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음으로 사라와 하갈 간에 엄청난 다툼이 일어나고 하마터면 가정이 깨질 뻔했습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낳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훗날 무슬림 종교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대적자가 아브라함의 불순종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 때와 시기를 주님께 맡깁시다. 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때, 자녀들이 세워지는 때, 남편이 회복되는 때, 직장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문제, 건강 문제 앞에서 내 때와 시기를 주장하지 말고 하나님께 때와 시기를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신앙생활을 합시다. C.S 루이스가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직분을 맡은 자에게 위대한 것이 발견되어야 한다. 즉 매일 매일이 마치 우리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지만, 마치 이 세상이 수백 년 동안 지속될 것인냥 계획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때와 시기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매일 매일 내 삶이 마지막인 것처럼 성실하게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입니다. 비록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100년을 내다보고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희망의 삶 말입니다. 때와 시기를 결정하는 주권은 하나님께 있고 주님은 나를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도록 하셨다면 지금 내가 살고있는 삶의 현장이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있다는 것을 믿읍시다. 그리고 그 통치가 절대 선하다는 것을 믿읍시다. 무엇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다는 것을 믿읍시다. 하나님은 내 인생길을 최고의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읍시다.
셋째로 증인은 성령의 권능을 덧입어야 합니다.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부탁하시면서 이 일에 증인이 되려면 성령의 권능을 덧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제자들은 권능을 받게 됩니다. 권능은 헬라어로 ‘두나미스(δύναμις)’입니다. 영어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는다는 것은 다이나마이트가 폭발하는 것과 같은 힘을 덧입는 것을 말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하늘의 능력이 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들은 어리숙하고 실수도 많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기도하다가 잠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갈 때 도망치고, 베드로는 세 번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마음으로는 예수님이 부탁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는 증인의 삶은 노력이나 마음의 결단으로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40일 동안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해도 못 알아 듣습니다. 여전히 육신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증인은 성령의 권능을 덧입어야 합니다.
오순절 계통에서는 예수님을 믿었다고 모두 성령세례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따로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있었던 그런 유의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장로교에서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이미 성령세례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성도들이 헷갈립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성령의 역사 없이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느니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나를 구원했다고 믿어지면 분명한 것은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신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님은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을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의 성품 곧 인격이 변화됩니다. 혈기가 죽고, 게으름이 변화여 충성된 삶으로 나타나고, 온유해지고, 사랑이 많아지고, 자꾸 기쁨이 가슴 속에서 차고 넘치며, 다른 사람과 화목의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반드시 성화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면 은사를 주십니다. 은사는 영어로 'gifts' 선물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은사에는 지혜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 섬김, 가르침, 권위, 구제, 다스림, 긍휼, 베풂 등이 있습니다. 이 은사는 성령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주시는 선물이지 인간이 억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은사의 가치는 같습니다. 우열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모든 은사는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잘 세우도록 하기위해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세례 하면 마치 방언, 예언, 병 고침, 귀신을 쫓아내는 것 이런 외적 은사에 너무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도 성령의 권능이고, 성품이 변화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도 성령의 권능이 임한 것이며, 외적 은사들이 나타남도 성경의 권능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되리라’는 것은 저절로 된다는 뜻입니다. 증인은 내가 될려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가 되도록 내 안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전하자 3천명 5천명 회개했고, 그들이 믿음으로 선포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문등병자가 고침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은 그 자체가 혁명적인 삶이요, 기적의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 힘으로, 우리 노력으로, 우리 인격으로, 우리 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하면 저절로 신앙생활은 되어집니다.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사명을 억지로 감당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이 오실 때 비로소 제자들이 증인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고 증인이 되라는 이 순서를 잊지 맙시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 기쁨으로 됩니까? 아니면 억지로 해야 할 정도로 힘듭니까? 성령충만함의 문제임을 알고 성령의 권능을 덧입기 위해 기도합시다.
넷째로 증인은 재림의 때에 영화롭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고는 제자들과 500여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하늘로 올려졌습니다. 이 때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그들 곁에서 서서 말씀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이 사실을 가슴속에 깊이 담아 두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이것이 마라나타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때가 되면 오십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땅 끝까지 전파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이 다 끝나면 그 때 다시 오십니다. 마태복음 24정 14절 말씀대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것이 바로 제자들이 물었던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의 때입니다. 그 때가 되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십니다”(살전5:16) 그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먼저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고 하늘로 들리움을 받습니다. 그다음에는 살아 있는 그 시대의 성도들이 산 체로 몸이 홀연히 변화하여 공중으로 들리움을 받습니다. 휴거입니다. 그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 증인들에게 이런 엄청난 영광의 날이 오고 있습니다. 증인의 삶에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림의 날 이런 영광스러운 승리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증인의 삶에는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광도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과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의 증인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증인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증언해야 합니다. 더불어 때와 시기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묵묵히 하나님 나라의 일을 충성되게 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대한 영적 전쟁이 있기에 증인은 반드시 성령님으로부터 부어지는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끝으로 증인은 헌신과 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현재의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증인들은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되고 새 하늘 새 땅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순교자적인 자세로 증인의 삶을 살아냅시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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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 사무엘서1강(제목 : 고난,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습니다) | 김성철 | 2026-08-02 | 53 | |
| 113 | 누가복음79강(제목: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지만...) | 김성철 | 2026-08-02 | 44 | |
| 112 | 누가복음78강(제목: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할 수 있겠는가?) | 김성철 | 2026-07-26 | 58 | |
| 111 | 누가복음77강(제목 : 하늘 문이 활짝 열리다) | 김성철 | 2026-07-22 | 62 | |
| 110 | 누가복음76강(제목: 한 사건, 두 반응) | 김성철 | 2026-07-12 | 78 | |
| 109 | 26년맥추감사주일 (제목 : 만 가지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 김성철 | 2026-07-05 | 110 | |
| 108 | 누가복음75강(십자가에서 바라본 사람 풍경) | 김성철 | 2026-06-28 | 101 | |
| 107 | 누가복음74강(제목: 내 대신 십자가품팔이하신 예수님) | 김성철 | 2026-06-21 | 106 | |
| 106 | 누가복음73강(제목: 십자가를 향해 가는 고요한 마음) | 김성철 | 2026-06-14 | 108 | |
| 105 | 누가복음72강(제목: 실패를 극복하는 3가지 영적법칙) | 김성철 | 2026-06-07 | 112 | |
| 104 | 누가복음71강(제목: 일어나 기도하라) | 김성철 | 2026-05-31 | 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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