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39강
제목 : 받은 세례는 받을 세례로 완성됩니다
본문 : 누가복음12:49~53
오늘은 세례예식이 있는 주일입니다. ‘강충렬, 정복희, 곽경민, 류향자, 안수진, 양하진, 김유하, 김예서’ 8명의 세례자와 ‘김예슬, 김윤현, 박예준, 정하율, 조민서’ 5명의 입교자들의 입교예식이 있습니다. 한 장로님께서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세례를 받고 입교예식을 하게 되어 기쁘다고 했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주님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교회의 존재 목적 중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영혼을 구원하여 세례를 베풀고 그들을 말씀을 잘 양육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하는데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세례 베푸는 예식이 끊어진다면 마치 한 가정에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예로부터 ‘삼희성(三喜聲)’이라고 해서 아이 우는 소리, 책 읽는 소리, 여인들의 다듬이 소리를 한 가정에서 들리는 세 가지 기쁜 소리로 꼽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아이 우는 소리에서 대를 이을 후손에 대한 든든함을 느꼈고, 책 읽는 소리에서 정신세계의 풍요로움을, 여인의 다듬이 소리에서 일상생활의 근면성을 느끼면서 그 가정에 대해 안정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삼희성이 들리는 가정은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는 삼희성의 두 배인 ‘육희성(六喜聲)’ 즉 ‘여섯 가지 기쁜 소리’가 항상 들렸으면 합니다. 먼저는 매년 세례 베푸는 소리, 찬양소리, 기도소리, 성경 읽는 소리, 성도님들의 교제하면서 하하 호호 웃는 소리, 식당에서 지지고 볶는 소리와 남자 성도님들의 설거지 소리가 늘 들렸으면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교회 안에 이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은 세례 주일로 천하보다 소중한 8명의 영혼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날입니다. 더불어서 5명의 유아 세례자들이 자신의 믿음으로 신앙고백하면서 우리 교회의 일원으로 입교하는 날입니다. 이 기쁜 날에 우리가 다시 한번 세례의 의미를 살피면서 세례받은 자로서의 구별된 삶 존귀한 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결단이 있는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밝힙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49절) 예수님은 불을 땅 곧 우리가 사는 세상에 던지러 왔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불이 무엇일까요? 어떤 분은 ‘성령의 불이다.’ ‘심판의 불이다.’‘아니다 복음의 불 말씀의 불이다!’ 하면서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든 예수님은 이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습니다. 그런 이 불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51~53절 말씀을 읽어 보면 이 불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감을 잡게 합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다 /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 아버지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리라” 예수님이 던지는 불 때문에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34절에서는 “내가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여 검을 주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검은 서로를 죽이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예수님이 불을 던지고, 검을 주기에 사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쟁이 최악인 것은 천륜으로 이루어진 가정 안에서까지 일어나며 그 결과 가장 끈끈하고 신뢰가 두터운 혈연관계마저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던지는 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기에 천륜의 관계까지 깨뜨리는 분쟁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도대체 천륜으로 이루어진 가정 안에서까지 분쟁을 일으키는 이 불은 무엇일까요?
50절을 읽겠습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예수님이 받을 세례 때문에 일어나는 분쟁입니다.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무엇입니까?
사실 예수님은 이미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밥티스마’라 합니다. ‘잠기다 적시다’의 뜻을 가집니다. 그래서 원어의 의미를 충실히 살리면 ‘세례(洗禮)’ = ‘죄를 씻어낸다’ 보다 ‘침례(浸禮)’ = ‘죄를 물속에 장례지낸다’ 는 의미가 더 정확합니다. 세례는 물속에 잠김으로써 옛 사람이 죽고 죄를 씻고 물에서 나옴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을 결단하는 예식입니다. 갈라디아서 3:27절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례는 죄의 누더기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새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덧입는 삶입니다.
또한 로마서 6장 3-4절 말씀은 세례에 대한 또 하나의 의미를 추가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례받은 자는 구원받은 자로서 그리스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가는 연합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를 이미 받았습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결단의 예식을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죄가 없기에 세례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셨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셨다는 것은 인류 전체가 속해 있는 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셨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로 예수님은 자신의 세례를 장차 당신이 겪을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예고로 이해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기에 또다시 세례를 받으면 안 됩니다. 교회사에서 세례를 또 받으면 재세례파라 하여 이단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받을 세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받을 세례 때문에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였느냐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미 요단강에서 받은 세례적 의미를 앞으로 받을 세례를 통해서 완성 시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바로 십자가에서 죽는 세례를 의미합니다. 요단강에서의 세례가 상징적 의미의 세례라면 십자가에 받을 세례를 진짜 세례로 여기신 것입니다. 진짜 옛사람이 못 박혀 죽는 세례이고 동시에 3일 후에 다시 살아나는 새 생명의 세례입니다.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는 세례이고 동시에 3일 후에 다시 살아나가는 세례입니다. 이 세례를 통해서 복음은 완성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받을 세례를 통해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의 불’이 완성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던지는 불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로 상징되는 복음의 불입니다. 이 불이 던져지는 곳마다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 불을 받으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됩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해방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했습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분과 연합하면 더 이상 율법의 정죄는 없습니다. 심판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불을 거절하면 심판이 임합니다. 요한복음 3:18절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래서 이 불은 죄를 소멸하는 심판의 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불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사이를 분쟁하게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어머니와 딸 사이를,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분리 시킵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이 불을 받으면 구원받고 거절하면 심판에 처해 지는 것처럼 이 불을 받은 자와 이 불을 거절한 자 사이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완전히 다른 길입니다. 천륜 사이까지도 분리시키고 분쟁시키는 불입니다.
그래서 이 불을 받은 자는 각오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불을 거절하는 자로부터 받게 되는 고난입니다. 그래서 이 불은 고난의 불, 자기 십자가의 불이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의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세례받은 자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세례받음으로 우리는 어둠에 빛으로 옮겨졌고,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에서 의롭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이제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예수님의 삶을 재현해야 하는 주님과 한 몸이 된 삶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세례 받았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습니까? 이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고난입니다. 때로는 핍박받는 삶이기도 합니다. 가정에서 불편한 관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분리되는 힘든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내가 사는 것은 칭의입니다. 내가 죽고 이제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은 성화입니다. 우리는 세례받은 자로서 성화의 길 거룩한 예수님의 삶을 재현해야 하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 받은 세례는 상징적인 세례입니다. 의식적 세례입니다. 지식적 세례입니다. 그러나 세례받고 난 이후의 앞으로 받을 세례는 진짜 세례받은 자로서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살고, 나의 옛사람이 죽고 새로운 존재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고, 죄의 옷을 벗고 예수님으로 옷 입는 삶을 살아야 하는 주관적 세례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사는 ‘나죽예사’의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주님은 흥하고 나는 쇠하는 ‘주흥나쇠’의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고백했던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 역사하느니라”(고후4:12) ‘사우생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받은 세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받을 세례가 진짜라는 것입니다. 이제 진짜로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살고 나의 영광이 아닌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의 영광을 죽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주흥나쇠의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삶을 위해서 때로 사망은 내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 역사하도록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웃을 살리는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오늘 세례받은 것은 이제 신앙의 시작입니다. 세례받은 이후에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앞으로 받을 세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했습니다. 물 세례받았습니까? 이제 진짜 내가 죽는 예수님이 받았던 그 십자가의 세례를 여러분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미 주님이 완성해 놓은 복음의 불을 받았는데 주님이 내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내가 받을 고난 다 받았는데 무슨 내 십자가가 있는가요?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면서 여러분이 받게 될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세례받은 자가 주님을 따르면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소금과 빛의 삶을 살려고 할 때 세상에서 받게 될 핍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 앞으로 받게 될 진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세례입니다. 이 세례를 두려워하지 말고 받으십시오. 예수님이 주신 복음의 불을 받으면 여러분의 인생 속에는 그 불로 인해서 받게 될 고난 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 오해받고 핍박받게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핍박받게 될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진리와 불의가 함께 섞일 수 없기에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기에 세례받은 자로서 여러분은 고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세례받은 자들에게 남겨 놓은 고난입니다. 이 고난을 여러분의 육체에 채우십시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을 여러분의 몸에 새겨 넣으십시오.
세례받은 자로서 이 삶이 이루어질 때 여러분은 진짜 받은 세례를 완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너는 진실로 나를 따르는 참 내 제자, 내 자녀, 내 백성, 내 장자, 내 상속자구나!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세례받은 자뿐만 아니라 이미 세례받은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받은 세례는 받을 세례로 완성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아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주 하가다 말씀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우리가 앞으로 받게 될 세례를 우리의 육체에 채움으로 받은 세례를 완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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