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9강
제목: 잃은 영혼을 부지런히 찾으시는 성령 하나님
본문: 누가복음15:8~10
누가복음 15장에는 예수님의 세 가지 비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 주에 설교했던 1~7절까지는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입니다. 양 백 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잃은 목자가 99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하여 온 산과 계곡과 들판을 헤매면서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다 결국 찾아냅니다. 이 목자는 성자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양은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세상에서 방황하는 죄인을 가리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잃은 양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모진 고난받으시고 목숨까지 내놓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선한목자 예수님이 오셔서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행하신 모든 수고와 헌신을 700여 년 전에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8~10절까지는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입니다.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는 교회를 감독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잃은 자를 찾으시는 성령의 사역을 나타냅니다. 켐벨 몰간(G. Campbell Morgan)이란 신학자는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여인은 교회를 통해서 사역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는 유형이다... 성령은 종종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계시된다.” 그러므로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는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잃은 자를 찾으시는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인이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을 때 온 방에 등불을 켜 놓고 빗자루로 방을 쓸면서 찾는 모습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을 철저히 찾아 회복하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살펴볼 세 번째 비유는 11~32절까지로 ‘잃은 아들을 되찾는 아버지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잃은 자를 기다리시는 성부 하나님’의 모습을 계시해 줍니다. 자신을 떠나 먼 나라에 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아들일지라도 그가 돌아올 때 아버지는 외면하지 않고 몸소 뛰어나가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그리고는 거지가 되어 돌아온 냄세 난 아들을 즉시 목욕시켜주시고,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히시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며,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풉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녀들이 돌아오는 것을 이토록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비유를 통하여 잃어버린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찾으시는 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는 사실 다른 두 비유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관심이 작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 이야기에서도 잃은 영혼을 찾기까지 찾아 나서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잃은 드라크마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여기서만 나오는 은화의 일종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과 같은 값으로 지금의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수천 수억 원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 결혼 풍습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결혼할 때에 신랑은 신부에게 열 드라크마 은전으로 된 머리 장신구를 선물해 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남편의 사랑의 서약이 담긴 열 드라크마로 만들어진 이 머리 장신구를 애지중지 결혼 소장품으로 간직합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열 드라크마로 만들어진 이 머리 장신구에서 동전 하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한 드라크마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가진 동전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결혼반지와 같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왜 여인은 불을 켜고 빗자루를 들고 온 집안을 쓸면서 부지런히 찾는 것입니까? 왜 이 여인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향해 이토록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찾기 위한 모든 수고를 다 합니까? 왜 이 여인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아내기까지 포기하지 않습니까? 왜 이 여인은 그 한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 그 동전보다 더 큰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면서 기쁨을 나눕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 한 드라크마에는 결혼의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한 드라크마에는 사랑의 징표가 있는 유일한 결혼 기념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를 통해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까지 찾으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제목인 “잃은 영혼을 부지런히 찾으시는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세 가지 영혼사랑의 노력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교회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 위해 모든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여인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교회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이 여인이 잃어버린 영혼을 상징하는 한 드라크마를 찾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수고와 헌신을 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여인이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고자 불을 켜고 빗자루를 들고 온 집안을 쓸면서 집중하여 부지런히 찾았던 것처럼 교회도 반드시 잃어버린 영혼을 부지런히 찾는 모든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한 영혼을 찾아 건져내는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온전히 열심히 감당해야 합니다.
11월 세째 주에 동광행복나눔잔치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구원의 방주가 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다하는 시간입니다. 요즘 전도하는 것 쉽지 않다고 합니다. 교회마다 예배드리는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아우성 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대마다 반드시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서 전도하다 고린도인들의 거친 말과 위협으로 전도할 의욕을 상실한체 두려워하면서 이 지역은 전도가 안 되는구나 생각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자 고민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그날 밤 환상 가운데 말씀했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18:9~10) 고린도 도시에 주님께서 창세전부터 예정해 놓은 구원 받아야 영혼이 많다고 했습니다. 광주에는 140만 명의 영혼이 있는데 그 중에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할 방황하는 영혼이 여전히 많습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이 영혼들을 찾고자 방에 불을 켜고 빗자루를 들고 온 지역을 쓸면서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그 영혼을 찾아내야 합니다. 교회는 유일한 세상의 등대요 영혼의 쉼터요 삶의 희망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광주동광교회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수고와 헌신이 조금도 후퇴하거나 쇠퇴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오히려 역사가 오래될수록 영혼사랑의 열정이 더 뜨거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지금부터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자 먼저 기도부터 하면서 생각나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더불어서 틈만 나면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면 교회로 인도할 수 있을까 지혜를 구하십시오. 지금부터 11월 16일 동광행복나눔잔치에 초청할 영혼을 기도로 품으면서 성령께서 그 영혼을 구원해 주시도록 선포하십시오. 또한 가을에 시작되는 동행나를 계획하는 위원들은 다른 어느 해보다 진심과 열정을 쏟아서 오충만 전도사님을 잘 도와 최선을 다해 준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잃은 영혼을 전도하여 교회에 오게 하고, 회심하게 하여 세례를 베풀고, 말씀을 가르쳐 하나님의 성숙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임을 단 한 순간도 잊지 맙시다.
둘째로 교회의 허물과 건강하지 못한 모습 때문에 세상으로 가버린 영혼이 있다면 부지런히 찾아서 다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 법적 분규로 7년 동안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런 아픔을 겪는 동안 연약한 성도들이 시험을 받아 신앙생활에서 떠난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교회로 가서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만약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으로 상처받아 신앙생활 자체에 염증을 느끼고 세상으로 갔다면 다시 찾아서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데려와야 합니다.
초대 교부 키프리아누스는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 고 처음으로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교회는 지속적으로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1962년 제2차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했고 타 종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그러나 장로교단의 신학의 뿌리가 되는 개혁교회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입장을 더욱더 확고히 했습니다. 장로교신학의 뿌리가 되는 제1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를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요, 신부로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며 끌어안는다. 이들에게는 하나님도 하나이시요, 주 예수도 하나이시며,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다. 이 교회 밖에서는 생명도 영원한 복도 없다.”(1560년, 제1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16조)
또한 개혁교회의 초창기의 중요한 신앙고백서 중에 하나인 『벨직 신앙고백서(1561년)』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으므로 ... 모든 사람은 회중에 들어가서 회중과 하나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교회의 하나임을 유지하고, 교회의 가르침과 권징에 복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고개를 숙이고, 같은 몸의 지체들로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형제들의 건덕을 위하여 서로 섬겨야 한다”(벨직 신앙고백서. 28조)
개혁교회 다시 말해서 개신교는 성도의 구원은 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밖으로 떠나 있는 영혼을 찾아 신앙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특별히 코로나19로 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는 성도가 많습니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가나안 성도가 10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얼마 전 우리교회 한 집사님께서 예배에 나오지 않아 알아보았더니 한국교회에 실망하여 잠시 교회를 쉬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제는 이들을 교회로 다시 되돌아 오게 하는 것이 불신자 전도 못지않은 중요한 교회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가나안 성도는 기성교회의 수직형 리더십, 명령과 복종 강요, 개인의 신앙보다 전체적 성장주의에 몰입하는 구조에 염증을 느낀 그룹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건강한 교회의 본질의 회복에 있습니다.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죽은 정통은 이단만큼 나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정통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붙잡아야 할 것은 생명을 살리는 복음입니다. 말씀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는 진실된 예배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참된 신행일치의 삶입니다. 형식 전통 조직을 유지하고자 교회를 살리는 복음의 생명력을 죽인다면 그것은 이단보다 무서운 죽은 정통입니다.
우리 광주동광교회가 잃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건강한 교회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깨어 있고 정직하게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와 그런 목회자를 협력하며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겸손한 장로님들의 모습이 있다면, 그리고 구역식구들을 내 가족처럼 사랑으로 돌보는 따뜻한 구역장님이 있다면, 새가족이 오면 온 성도가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고 격려하는 교회라면, 그래서 교회 마당만 밟아도 평안이 느껴지고,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그런 교회, 찬양이 뜨겁고, 기도가 살아있는 교회가 된다면... 주님은 잃어버린 많은 영혼을 우리교회에 맡겨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따뜻한 구역,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힘을 다합시다. 주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우리 광주동광교회를 사용하시도록 우리의 삶을 더욱더 예수님을 닮은 삶으로 성숙시키며 우리의 관심을 영혼사랑에 온전히 둡시다. 주님께서 천하보다 소중한 그 영혼을 우리 교회가 돌보도록 보내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택하신 자는 반드시 찾아내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도하는 일에 겁먹지 말아야 합니다.
롬8:29~3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지하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실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전부터 택함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믿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 아니고 믿도록 선택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왜 전도해야 합니까? 복음을 믿도록 선택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복음을 전할 때 담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말을 못해도, 내가 연약해도 믿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다 거절당하고, 무시받을 수 있고, 조롱당하고, 핍박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돌아올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내기까지 찾고자 하는 영혼이 우리 주변에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입을 엽시다. 예수님 믿으세요! 우리교회로 한 번 와보세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신앙생활 너무 행복해요! 이렇게 틈만나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하십시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토마스 왓슨은 “성도는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초상화다” 했습니다. 성도의 얼굴이 전도지입니다. 성도의 얼굴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라고 쓰여져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눈빛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져야 합니다. 성도의 말 한마디에도 성경 말씀이 느껴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얼굴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도할 세상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길이 무엇일까요? 삶보다 오래 남을 수 있는 일에 내 삶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우리의 능력과 물질과 시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천국에 가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천국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제게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에 제가 이곳에 올 수 있었습니다’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당신이 천국에 이르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과 천국에서 만나는 상상을 해보십시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당신이 쓰임 받는 것은 인생에서 성취하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그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당신의 생명을 붙들고 있고 당신의 삶을 축복하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래는 불려지기 전까지는 노래가 아니다! 사랑은 느껴지기 전까지는 사랑이 아니다! 믿음은 순종하기 전까지는 믿음이 아니다! 축복은 나누어지기 전까지는 축복이 아니다’ 생각으로 신앙생활 하지 말고 순종으로 신앙생활 합시다.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나누고, 내가 받은 축복의 삶을 나누고, 내가 받은 사랑을 흘러보낼 때 우리의 삶은 보석처럼 빛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삶을 더욱더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한 영혼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니고네모 한 영혼을 구원하고자 깊은 밤에 찾아오는 그를 밤 늦게 까지 상담하면서 거듭남의 비밀을 가르쳐주셨던 예수님, 거라사 광인을 구하고자 광풍이 이는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거라사 지방에 가신 예수님 그리고 그 한 영혼을 위해 돼지 2천 마리 희생도 불사하셨던 예수님, 남편 다섯 명과 살아보아도 행복이 없었던 한 사마리아 여인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뜨거운 사막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그 여인이 오기 전에 먼저 우물가에 도착하여 기다리셨던 주님의 한 영혼을 향한 사랑,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고 왕따 시켰던 삭개오 한 사람을 찾아 그 집에 하루를 유하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주님은 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어떤 희생도 불사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셨습니다.
사실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이런 사랑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가 받은 그 사랑을 나눌 때 그 사랑은 참 사랑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그 축복을 나눌 때 그 축복은 진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구원을 주변 사람에게 나눌 때 내게 임한 그 구원은 진짜가 됩니다. 구원은 나를 통해서 흘러가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잃어버린 영혼을 찾을 때까지 찾으십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바로 우리의 입술과 우리의 손과 발을 통해서 우리의 얼굴 통해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십니다. 주님께 내 입을 드리고 내 발을 드리고 내 삶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은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잃어버린 영혼을 섬기는 일에 힘쓰므로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인생을 살아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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