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사무엘상6강(제목: 순종하는 자에게만 들리는 말씀)
2026-10-21 10:43:25
김성철
조회수   9

26년사무엘상 6강

제목 : 순종하는 자에게만 들리는 말씀

본문 : 사무엘상 3장 1~14절

결단찬양 : 주예수 크신 사랑(205장)

 

오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음성은 순종하는 자에게만 들린다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에게 성경은 해석되고 들려지며, 말씀이 그 사람을 통해 역사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지식이 있고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 있어도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성경은 해석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면적인 지식은 얻었다 할지라도 진짜 위대한 진리의 힘은 감추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조금더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말씀에 순종하려는 사람에게는 강력한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붙잡고 살려는 영적소망 갈망이 있습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말씀 앞에서 서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 기준으로 삽니다. 이런 사람이 성경을 읽는다면 성경은 해석되지 않으며 성경은 말씀하지 못합니다. 지식으로 얻는 문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여 성령의 내적 조명아래에서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란 성령의 기름부으심안에서 성경을 읽는 자란 의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요지입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여기서 아이 사무엘을 영어 성경에는 ‘The boy Samuel’로 표현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때 사무엘의 나이를 12세 정도로 추정합니다. 사무엘이 청소년이 되어 엘리 대제사장의 감독을 받으면서 성소에서 공식적인 직무를 감당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의 특징은 ‘말씀이 희귀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그 시대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날 때에 그 징벌로 자신의 계시를 나타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것을 영적 기갈로 표현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 기갈을 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말씀이 죽어버린 교회를 수년 동안 다녀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의 은혜가 사라지면 모든 삶의 기력을 빼앗겨 버립니다. 아무리 좋은 집, 좋은 음식, 좋은 옷을 입고 다녀도 말씀이 없는 성도의 영혼은 갈증과 허전함 그리고 끝없는 영적 눌림 현상과 함께 우울증 정신질환에 시달립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음식과 물로만 살지 못합니다. 영혼의 양식인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먹어야 사람은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희귀한 세대는 저주받은 세대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이 희귀하면 나타난 현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상이란 Vision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임하면 사람들은 Vision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야망이 아닙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욕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높은 이상입니다. 높은 가치입니다. 높은 삶의 꿈을 갖게 됩니다. 이웃을 돌보고 긍휼히 여기며 세상을 살리는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으면 세상은 변합니다. 죄가 관영하는 곳에 희망의 꽃이 피는 세상이 됩니다. 그래서 잠언서 29장 18절은 말씀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묵시는 KJV에서는 Vision으로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방자히 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절대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절대 기준이 무너지면 사람들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가치관이 혼돈되고 분별력이 상실됩니다. 또한 시대의 조류를 따라 되는대로 살기 때문에 탈도덕 현상이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범죄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됩니다. 바로 묵시가 없으면 사사시대 때 일어났던 레위인 첩 윤간 사건과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우상숭배와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에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라고 했는데 당시 엘리의 나이 98세였습니다. 이것은 엘리가 육신의 눈이 어두웠다는 뜻과 함께 영적인 눈도 어두워져서 모든 부분에서 분별력을 상실했다는 뜻도 됩니다. 모세는 죽을 때에 그의 나이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아 어이없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육신의 눈도 흐려지고 영적인 눈도 흐려져 어이없는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면서 이스라엘 전체적으로 영적 악영향을 끼치고 있어도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심정을 통한 한나에게 포도주를 끊으라고 헛소리도 했습니다.

그 시대는 희망이 없는 시대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표현이 눈에 띕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다’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매일 저녁 규칙적으로 등불을 켜서 새벽에 끄도록 되어 있는 성소 안의 일곱 등대를 말합니다. 아직 새벽이 오직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문맥에서 보면 그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다고 봅니다. 바로 하나님의 희망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희망의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암흑기인 절망적인 그 시대에 하나님의 희망의 등불인 어린 사무엘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통해서라도 그 어두운 시대를 밝히시고자 그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찾는 이가 없을지라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희망의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 을 믿읍시다.

 

하나님은 영적 암흑시대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불러서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노아의 대홍수 심판 이후 인간들은 또다시 바벨탑을 쌓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이 세상은 도무지 희망이 없는 것 같았고 하나님은 포기할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다시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심으로 희망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애굽에서 포로생활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는 모세 한 사람을 불러내셨습니다. 신약시대를 시작할 때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을 불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입니다. 희망의 사람들을 찾아내어 불러서 그 시대를 변화시키는 희망의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희망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광주동광교회가 한국교회의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목회자로서 우리 시대에 희망의 등불로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저와 여러분이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두운 시대에 희망의 등불로 부름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오늘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희망의 사람이 누구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4~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하나님께서 마침내 사무엘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분이 하나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엘리 대제사장이 부른 줄 알고 얼른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엘리의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이 부름은 6절에서도 8절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세 번째 사무엘이 엘리가 부른 줄 알고 뛰어갔더니 그때야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만큼 영적으로 둔감했습니다. 그러면서 엘리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지 가르쳐 줍니다. 9절입니다.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깊은 영적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실 때 사무엘은 세 번이나 엘리의 음성인 줄 알고 엘리에게 뛰어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답답하여 “사무엘아 엘리가 아니고 나다! 엘리 목소리와 내 목소리도 분간 못하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고 사무엘 너의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사무엘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를 통해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무릎을 꿇을 때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종의 자세로 순종하여 듣고자 할 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순종하는 자세가 없으면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종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를 때도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노예는 신발을 신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금부터 너는 내 종이니까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서라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 앞에서 신발을 벗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서기를 원하십니다. 종은 주인 앞에서 자기가 없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 자기 욕심, 자기 생각 같은 것은 완전히 없어져야 합니다. 오직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해야 합니다. 그것이 종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를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할 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황태자 황공주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고 보배로운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부름받은 주의 종들로서 또 다른 사명인의 자세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증인으로 부름받아 나선 주의 종들인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끌소서...” 주님 말씀하시면 아브라함처럼 갈바를 알지못해도 떠날 수 있고 주님이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종의 의식이 있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는 고백이 있습니까?. 오늘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듣습니까?

 

종의 자세가 없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의 희귀하여 이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말씀만 듣고 부담스러운 말씀은 듣고 싶지 않다면 하나님은 말씀하기를 꺼려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요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까? 가슴에 뜨거운 감동과 은혜가 쏟아집니까? 말씀에 순종하려 하는 자에게는 이런 은혜가 쏟아집니다. 그러나 순종하려는 자세가 없는 사람은 말씀을 읽어도 감동이 되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그 의미가 해석되지 않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가 없으면 점점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심령에서 사라집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부담스럽습니다. 왜요? 내 인격과 수준을 넘어서는 말씀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는 그릇이 작은데 하나님은 큰 용사라고 하십니다. 나는 소시민인데 하나님은 눈을 들어 시대를 품으라고 합니다. 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한 없이 부족함을 느끼고 좌절하는데 너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주역이고 너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은 늘 너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가치있고 사랑받고 있는 이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걸작품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솔직히 교만하고 이기적인 나를 보면 희망이 없는데 말씀속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고 따뜻함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말씀 속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꿈 사랑 희망 위로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준비하다가 소시민이 모세가 되고 열등감에 찌든내가 다윗이됩니다. 나를 보면 자원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수있다로 어느새 변해 있는 것을 봅니다. 주님 말씀하신대로 순종하여 살겠습니다. 이렇게 나를 찢어 넗히고 생각을 높이고 인격을 하나님수준으로 세우시는 시간이 설교준비시간입니다.

 

그래서 말씀 사역이 힘들 때가 너무 많습니다. 부족하고 두렵운데 자꾸 위대한 하나님의 세계로 데려가시기 때문입니다. 땅 한 평없고 아들 한 명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면서 너의 후손이 이와같으리라! 땅한 평 없는데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고 다 네가 차지할 땅이다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 제대로 하면 하나님의 수준으로 가게 됩니다. 미운 사람도 용서가 되고 무능력한 사람이 능력자가 되고 실패의 사람이 기적을 일으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신앙생활의 열매입니다. 부족한 현실에서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려고 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의 종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그런 자들이 진정으로 이 시대의 하나님의 등불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들은 바로 주의 종의 자세를 가지고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바로 그들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사무엘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 대답하자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1~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사무엘에게 엘리 집안에 선포한 심판을 다 이루시고야 말겠다고 다짐하십니다. 그래서 엘리 가문이 받은 심판의 소식을 듣는 사람마다 두려움과 공포의 큰 충격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실제적으로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한 날에 죽습니다. 그날 그 충격으로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 넘어져서 목이 부러저 죽고, 출산하던 며느리도 죽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집니다. 사무엘은 이 엄청난 예언의 말씀을 영적 아버지와 같은 엘리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 예언을 주셨고 말해야 했습니다.

 

18절을 읽겠습니다.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엘리는 사무엘이 말하기를 어려워하자 만약에 네가 내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해 줄 것을 강청합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우리가 엘리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듣고자 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록 영적으로 많이 무디어졌지만 엘리 대제사장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런 영적 부모와 같은 엘리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그에게 공포스러운 심판의 음성을 자세히 말했습니다.

 

이때 엘리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저는 이점이 엘리 제사장의 인생에 가장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만약 현재의 저의 영성이라면 곧바로 금식 기도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울고불고 애원하면서 가슴을 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통회의 기도를 할 것입니다. 내 자녀가 죽고 가문이 죽고 이스라엘이 죽는 문제인데... 이토록 무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다니요? 다윗은 나단 선지자로부터 밧세바를 범하는 문제로 심판을 선고받자 통곡하면서 회개하고 뼈가 쇠하도록 침상에 눈물을 적시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요나로부터 40일 후에 니느웨가 심판받아 무너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니느웨 성 사람들은 왕에서부터 온 백성이 심지어는 짐승에게까지 다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쳤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가장 악한 아합 왕은 어떠했습니까? 열왕기상 21장 27~28절 보면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가장 악랄한 우상숭배자 아합의 회개 기도도 받으셨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금식하며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엘리는 그만큼 영적으로 비둔하고 무덤덤하게 변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축복을 주십니까? 다 같이 19~20절 말씀을 한목소리로 읽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사무엘의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퍼졌습니다. 그 이유는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이 했던 말은 그대로 모두 다 성취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섬겨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이 부족해도 이루어지게 하시고 모든 부족한 것들까지도 하나님이 다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100% 신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 순종하는 종들에게 하나님은 그 사람과 함께 하셔서 그가 선포한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합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란 성령충만한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 안에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는 사람을 하나님은 책임지고 그 사람의 입술을 통해서 선포된 비전이 다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이사야 29:13절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성령충만없이 말씀을 받으면 입으로만 신앙생활합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함으로 말씀 앞에서 서서 주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렇게 하면 말씀이 내 인생을 끌고 가고 그 말씀으로 인해 내 삶에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임하고 그 약속의 말씀을 통해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이 임합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이 아니라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신앙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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