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2026년부활절설교(제목:만약 부활이 없다면...)
2026-04-07 06:06:29
김성철
조회수   6

2026년 부활절 설교

제목 : 만약 부활이 없다면...

본문 : 고린도전서 15:16~20

 

오늘은 예수 부활하셨네~ 나도 부활하겠네!!!

이 땅의 수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종교는 없습니다. 인류역사에 큰 영향력을 끼친 위대한 종교창시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도 결국 사망을 이기지 못하고 무덤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유교의 창시자 공자는 73세에 죽어 중국 청평양에 무덤을 남겼습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80세에 죽어 인도 참수서당에 무덤을 남겼습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멧은 63세에 죽어 아라비아 메카에 웅대한 무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종교화합의 상징으로 조계종을 비롯한 정국의 주요 사찰들이 매년 성탄절을 앞두고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사찰 입구에 계시합니다. 종교가 말하는 사랑은 같다는 뜻에서 종교화합과 서로의 종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좋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절대 할 수 없는 현수막이 있습니다. 축 예수 부활이라는 현수막입니다. 이것은 탄생은 석가도 했고 마호멧도 했고 타 종교의 창시자들도 다 했기에 예수 탄생을 축하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죽었고 예수님은 부활했습니다. 모든 종교 중 종교창시자 중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축 예수 부활이라고 절대로 축하해줄 수 없습니다. 만약 축 예수 부활을 축하 해주면 기독교만이 인간을 온전히 구원해 주는 참 종교임을 인정해 주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부활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내부에서 부활을 부인하려는 사람들이 초기 교회 시대에서부터 있어 왔다는 사실이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타 종교가 아닌 기독교 내부에서 말입니다.

 

오늘 본문 15:1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통해서 또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예수님이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음을 듣고 그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부활의 증인인 베드로, 열두제자, 오백여 형제, 예수님의 혈육인 야고보, 그리고 이 편지를 쓴 바울을 통해서도 확실히 부활이 있다는 증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은 거룩하고 육은 부정하다는 이원론 사상인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을 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매우 진지하게 논박을 시작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변증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으로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몇몇 고린도 성도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만약에 그들이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어떤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가? 말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죽어서 무덤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4복음서가 증언한 대로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시체는 사라졌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헛소문을 냈습니다.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것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증거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죽으실 때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 때문에 다 도망쳤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지키고 있는 군사들을 죽이고 훔쳐갔을까요? 무엇보다 자신들이 훔쳐간 스승의 시체를 어디에 숨겨두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자신의 생명까지 걸고 증언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요? 거짓을 위해서 목숨 건 사람은 없습니다. 진실하지 않는 것을 그렇게 입을 맞추어 끝까지 지켜낸 일은 역사상 없습니다. 반드시 누군가가 그것은 거짓이라고 발설하기 때문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누군가가 진실을 반드시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하야시키고 왕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 복위를 위한 난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다가 함께 그 일을 계획했던 김질이란 학사가 목숨이 두려워 밀고했습니다. 결국 사육신과 함께 관련자 500여명이 처형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해야 하는 그 당시에는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많은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그 일을 증언했던 12명의 사도들은 다 순교했습니다. 거짓을 위해서 그렇게 다 목숨을 걸 수 있을까요? 거짓을 위해서 그렇게 당당하게 예수님은 부활했다고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부활을 증언하는 사도들을 예수님을 죽였던 그 산해드린 공회가 위협할 때 그들이 이토록 당당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가요? 조금도 목숨이 아깝지 않은 태도로 그렇게 거짓을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기록했던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습니다. 만약 바울의 그것이 거짓이었다면 핍박자에서 순교자로 돌변하여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 수 있었을까요?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다가 얼마나 많은 수고와 죽음의 위협을 무릎 썼는지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분 죽을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협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여러분 거짓된 사실을 위해서 이런 수고를 할 수 있을까요? 거짓된 것을 알리고자 목숨까지 걸고 평생을 위해서 이런 충성을 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부활을 증언하던 핍박자가 갑자기 180도 변해서 이렇게 변화되어 헌신할 수 있었던 어떤 비밀한 사건이 분명히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3번이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야기를 반복했다는 것은 그가 정말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아닐까요?

 

둘째,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사도들이 전파했던 복음이 헛것이 됩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이 좋은 소식의 핵심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지 않았다면 복음은 헛것이 됩니다. 이 헛것인 복음이 지난 2000년 역사 속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수많은 핍박과 환난을 겪으면서 왕성하게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유럽으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우리나라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유럽은 1000년 동안 이 복음 위에서 역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복음이 헛것이면 기독교 2000년 역사는 다 헛것 위에서 놀아난 것입니다. 사도들의 거짓 증언에 놀아난 것입니다. 정말 기독교 2000년 역사가 사도들의 거짓 증언 위에서 놀아난 것일까요?

 

셋째, 복음을 믿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도 다 헛것이 됩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고백했습니다.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죄가 용서함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루신 의가 믿는 자들에게 전가되어 그들도 의롭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8:5) 율법을 지켜야 의인이 되어 영생합니다. 우리가 갖는 의는 율법을 다 지킨 예수님이 완성하신 의를 전가 받은 칭의입니다. 예수님을 율법을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 대가로 영생에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율법을 다 지킨 의인으로서의 부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의는 완성된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인증받지 못한 의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나서 다시 살지 못했다면 예수님이 만든 의는 실패한 의이고 우리가 믿음으로서 의롭게 되어 우리도 영생에 들어간다는 이 복음의 진리는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17절 말씀과 같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 로마서 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죄의 삯인 사망이 해결되지 못했으면 죄 문제도 여전히 미결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완성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반쪽 집 밖에 짓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의 집을 다 짓지 못하고 완공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역은 실패입니다. 실패한 구원자를 왜 우리가 믿습니까? 실패한 복음을 우리가 왜 믿습니까? 우리 중에 그 누가 반만 지은 집에 들어가 살 사람 있습니까? 그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요, 위험한 일입니다. 바울은 이런 일을 가리켜서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며. 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 사람은 거짓 증인으로 정죄 받아야 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복음을 증언했던 사도들은 사기꾼으로 정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기꾼의 증언에 놀아난 모든 복음의 증인들은 다 사기꾼의 대열에 서게 된 것입니다. 마치 다단계처럼 다 12제자들의 사기에 걸려들어서 인생 쪽박 차게 된 것입니다. 다단계의 피해사례처럼... 금전적 피해, 정신적 피해, 관계적 피해 등 어마어마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무엇보다 정말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다 망했을 것입니다. 1세기 깜깜한 지하동굴에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다 햇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간 초대교회 성도들 다 망했습니다. 26살의 젊은 나이에 한국 땅에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조선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대동강변에서 칼에 맞아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인생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사기꾼들이 전한 복음을 믿게 되어 이렇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두 아들도 잃고 자기도 공산당들의 총에 맞아 죽은 손양원목사님은 또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스데반 집사는 또 어떻게 됩니까? “부활을 믿고 순교했는데 막상 죽고 나니 아무것도 없었더라 세상에 이런 사기극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를 비롯한 복음전도자들은 다 사기꾼들이요, 예수님은 인류역사상 최고의 사기꾼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담임목회자로서 매 주일마다 거짓 복음을 전하고 있는 전문사기꾼, 선교사님들은 국내에서 사기치는 것도 부족해서 다른 나라까지 가서 사기행각을 벌이는 국제 사기단들이 됩니다. 복음을 증거하고자 많은 전도 세미나가 열립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기를 칠 것인가 사기 잘치는 법을 시간 내서 익히는 사기 잘 치는 세미나를 열고 그 세미나에 참석하여 사기 잘 치는 법을 배우는 격이 됩니다. 이번 웰컴투푸른초장 전도잔치는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기잔치가 됩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모든 것이 다 거짓이 되고 복음 전도자들은 다 사기꾼이 됩니다.

 

다섯째, 부활이 없다면 누가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고자 노력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에게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어제 교회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는 남성교회와 유치부실에서 부활절 계란을 삶아서 포장하고 있는 교사 선생님들과 지하 식당에서 부활절 점심 메뉴를 준비하는 식사팀들의 수고와 헌신을 생각하면서 감사를 했습니다. 우리 광주동광교회가 참 하나가 되어서 열심히 주와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이 됩니다. 왜 우리가 이런 수고와 헌신을 무보수로 하는 것입니까? 또 우리가 왜 웰컴투푸른초장 전도잔치를 위해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씁니까? 왜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정직하게 살고자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고자 이렇게 노력합니까? 또 죄를 지으면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했습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자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죽은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15:32~34)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육성에 끌려다니는 삶에 약합니까? 수면욕 성욕 식욕 명예욕 게으름 탐욕 등 인간은 육성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면 누가 양심을 따라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아가려 합니까? 깨의 의를 행하려고 할까요?

 

영국의 무신론자들이 시내버스에 노골적인 광고를 했습니다. 신은 없는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고 인생을 즐겨라 무슨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어떻게 인생을 즐기라는 것인가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부활이 없다면 죄짓지 않고 살 이유가 없습니다. 사단은 죄를 즐거운 것이라고 죄짓지 않고 사는 인생은 수도원생활과 같이 답답한 삶이라고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죄를 지으며 즐겁게 사는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없습니다. 누가 죄를 즐거운 것이라고 했습니까? 주위에 죄짓고 고통당하는 사람은 수도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륜을 저지르다 가정이 깨집니다. 마약하다가 인생이 망가집니다. 도박하다가 거지가 됩니다. 죄가 즐겁다구요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고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파괴합니다. 죄는 삶을 허무하게 합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미워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에도 죄에 대한 경고음을 주는 양심의 소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본성상 죄를 좋아하시만 또하나의 본성이 죄를 미워하고 죄를 짓지않고자 싸우려 합니다. 인간 안에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내세가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부활의 삶이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첫 번째 열린 사과를 보면 그 다음에 열릴 사과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도 부활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지옥을 살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의 에덴이 회복되었습니다. 지옥같은 세상살이 속에서도 영혼에 잠잠한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찬양을 하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나의 평생에 가장 복된 일은 내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라 나의 평생에 가장 잘한 일은 내가 예수님을 주로 섬긴 것이라~”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부활의 몸을 제자들과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부활의 새 몸을 입고 승천하여 예수님과 함께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들림 받아서 새하늘 새 땅에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다시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셨네. 나도 부활하겠네.”

 

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러라”(고전15:19) 정말 부활이 없다는 우리 그리스도인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수고한 사람들은 부활이 있기에 더욱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더욱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과 몸을 드려서 섬기고 있습니다. 반드시 믿음의 삶에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악한 동무들은 부활이 없다 하면서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합니다. 속지 맙시다. 악한 동무들은 우리가 하려는 선한 행실을 더럽히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맙시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승리의 면류관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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