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63강(제목: 우리의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2026-02-08 12:50:56
김성철
조회수   5

누가복음 63

제목 : 우리의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본문 : 누가복음20:13~18

 

오늘 본문인 포도원 농부 비유는 사실 권위 문제에 대한 대답입니다. 20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이들이 왜 이런 말을 합니까?

 

대제사장들은 오직 자신들만 성전에 관한 모든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권위는 오직 자신들에게만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예수님에게 성전에 대한 어떤 권한도 준 적이 없는데 누구 맘대로 성전에 들어와 장사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을 내쫓으시는가? 무슨 권위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책망하는가? 무슨 권위로 매일 성전에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느냐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행한 예수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종교지도자들의 비위를 상하게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위로 이런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행하신 모든 일들과 가르치는 모든 말씀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메시야로서 모든 일을 행하고 계심을 그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고, 귀머거리의 귀를 열어주고, 벙어리의 입을 열어주며, 나병환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은 중풍에 걸린 병자에게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선언하자 서기관들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생각하자 예수님은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물으시고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라 하시고는 중풍병자를 일어나 걸어가게 함으로 죄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선언하셨고, 때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라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행하신 기적과 신적 권위가 없이는 할 수 없는 말들을 종합해 보면 그들은 충분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며 그 증거를 대보라고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오늘도 그들은 예수님께 도대체 누구맘대로 어디서 온 권위로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냐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묻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권위는 세례 요한의 권위와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메시야로 오시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보냄받았고, 그분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고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큰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백성들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었고 만약 종교지도자들이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을 부인한다면 돌에 맞아 죽게 될 것을 그들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겁한 대답을 합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종교지도자들의 이런 대답은 세례요한이 선포한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전의 주인이요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분이심을 인정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성전에 모여 있는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자신이 무슨 권위로 성전을 정화하고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는지 대답하셨습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여기서 포도원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농부는 종교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은 선지자를,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만들어 준 젖과 꿀이 흐르는 포도원에서 농부들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농사지어 마침내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때가 되자 소출 얼마를 받으러 종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포도원을 만들어 세로 내준 주인의 당연한 권리였습니다. 이때 농부들은 기쁨으로 종을 영접해야 했습니다. 자신들이 받은바 은혜를 생각하면 정한 소출 외에도 주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선물과 함께 감사 편지까지 써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농부의 입장에서 세를 받으러 종을 보낸 주인에 대해 갑자기 피해의식이 생겼습니다.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일한 것은 우리인데 아무 일도 안 한 주인이 세를 바치라니 이것이 옳은가?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작인이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들은 세금을 바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포도원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고자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들은 소출 얼마를 세로 받으려고 온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져 보냈습니다. 이 때 주인은 종들이 맞고 빈손으로 왔어도 농부들을 곧바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무슨 사정이 있게지하며 너그럽게 생각하고 두 번째 종을 보냈습니다. 이번에도 농부들은 종을 심히 때리고 능욕까지 하여 보냈습니다. 주인은 참고 세 번째 또 다른 종들을 보냈습니다. 주인이 세 번째로 또 다른 종을 보내자 이 번에는 거의 죽을 지경으로 상하게 하여 내어 쫓았습니다. 그들은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고자 했습니다.

 

사실 주인은 이들을 심판할 권위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곧바로 심판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쫓아내면 그들이 가난하게 살다가 배고파 비참하게 죽게 될지를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종을 영접하지 않고 때리고 능멸하고 상하게 한 농부들을 여전히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때가 되면 농부들이 회개하고 주인을 공경할 것이라고 믿어 주었습니다. 주인은 농부들과 어찌하든지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자 했습니다. 농부들이 주인이 베푼 사랑을 깨닫고 주인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습니다. 마침내 더 보낼 종이 없자 주인은 이제 어떤 결정을 내립니까?

 

13절 말씀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주인은 화를 내는 대신에 너무나 안타까워 탄식을 했습니다. 어찌할까? 저들이 왜 나의 진심을 모른단 말인가?” 여기서 어찌할까?’ 고민하는 주인의 마음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주인이라면 이런 배은망덕한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속담에 내 밥 먹고 큰 개가 내 발 뒷 축을 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을 향한 말입니다. 이렇게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면 인정사정없이 본때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 주인은 배은망덕한 농부들을 오히려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이 주인이 마음이 얼마나 선합니까?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인자와 자비가 풍성하신 주인은 고민 끝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를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주인은 마지막까지 농부들을 믿어 주었습니다. 내 아들을 보면 저들의 마음이 달라지겠지! 회개하겠지 엄청난 모험입니다. 마침내 위험한 시도를 합니다. 주인은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경호원을 한 명 딸려 보내지 않고 홀로 완악한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면 주인의 진심을 알고 농부들의 태도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농부들의 반응이 기가 막힙니다.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14,15) 농부들의 반응은 너무나 사악하고 끔찍해졌습니다. 이번에는 때려서 빈손으로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여 버렸습니다. 포도원 안에서 죽이면 포도원이 부정하게 되고, 땅값이 떨어질까 봐 아예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거기서 주인의 외아들을 죽였습니다. 얼마나 사악하고 가증스럽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그들을 구원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사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은혜 받은 농부들로서 당연히 하나님께 소출 얼마를 드려야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마음의 첫 자리를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엇나갈 때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보낸 선지자들을 존대하고 경청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마침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대해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34:6)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은혜롭고 자비와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은혜를 악으로 갚았습니다. 탐욕이 끝이 없어 분수를 모르고 교만하여 감히 하나님께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2:4,5절은 말씀합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하신 분이시지만,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멸시하고 악용하는 자는 심판 날에 임할 진노를 그 머리에 쌓는 것입니다.

 

사람은 참 묘합니다. 은혜로 잘해주면 더 잘해야 하는데, 분수를 모르고 교만해집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큰 코 다칩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잘 해 주실 때 말 잘 들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경고의 사인을 보낼 때 빨리 회개해야 하는데... 교만하여서 고집을 피우고 욕심을 부리다가 하나님께 크게 얻어맞게 됩니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참고 인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참고 또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시지만, 그 교만이 목에 차고, 탐심이 극에 달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습니다. 그 농부들을 진멸해 버리셨습니다. 포도원을 몰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이 이방인들에게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소탐대실이란 말이 있습니다. 조금 더 욕심부리려다가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전에서 예수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을 들으며 그들은 벌벌 떨면서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당연히 오늘 비유의 농부들이 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안되죠. 그렇게 처참한 심판을 받게 되면 안되죠.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되시는가?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17,18절 말씀입니다.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포도원 비유의 농부들처럼 종교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욕심을 부리고 예수님을 배척하며 잡아 죽인다고 하나님의 계획이 패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십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지만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 되게 하십니다(벧전2:4).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초석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이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이 예수님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들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벧전2:5). 장차 주님의 나라를 상속받고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포도원을 내 것이라고 욕심을 부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 삶의 주인은 나다! 우기는 자들의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의 심판대 위에 떨어져서 깨어지고, 심판의 돌이 그 위에 떨어져서 가루가 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포도원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사업의 열매도, 내가 일구어 놓은 가정도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내 생명을 주셨고 내 삶의 영역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가장 귀한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고 인생의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하게 된 농부들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많은 소출을 거두웠다 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의와 내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다 주님이 포도원을 만들어 주셨고,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어 주셨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시고, 때마다 햇빛과 공기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벌어들인 물질, 내가 평생 일구어 낸 업적, 가정, 자녀, 풍요로운 삶의 현장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비하면 내가 한 것은 만 분의 일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소출의 얼마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배가 고파서 우리에게서 소출 얼마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노예화시키기 위해서 주권을 행사 할려고 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와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 위해서,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나님과 영적인 질서를 지키도록,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소출 얼마를 요구하십니다. 그렇다면 기쁨으로 소출을 드려야합니다. 감사헌금을 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소금이 되어 사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많은 사람들이 다 가지기 위해서 욕심을 부립니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 인생은 내 것이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손해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받으시는 예배를 함부로 드립니다. 자기 이상과 욕심에 기초해서 삽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크게 맞는 날이 옵니다. 그 위에 떨어져서 깨어지고 가루가 된다고 했습니다. 세금 늦게 내다 물게 되는 과태료가 무섭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깨어지고 가루가 되는 것이 무섭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고, 적극적으로 주님께 내 삶의 중심을 내어 드리기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릿돌이십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요 우리의 삶의 기초요 중심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생사화복의 주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머릿돌로 영접하고 그 위에 모든 삶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예수님을 터로 삼아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은 인생이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은 집이 튼튼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까지 가서 영생합니다. 모퉁이의 머릿돌되신 예수님위에 인생의 집을 지으시길 기도합니다. 이로인해 주님께 칭찬 받는 주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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